시장에 맡겨진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생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매년 2만 명 넘게 발생하는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생사는 막힌 심장혈관을 뚫는(재관류) 치료를 골든타임 내에 받았는가에 따라 갈린다. 국가가 심혈관질환 응급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환자는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급성심근경색 환자 응급진료는 시장에 맡겨져 있다. 시장에 맡긴 결과 급성심근경색 치료를 하는 병원은 전국적으로는 과잉 공급되어 있지만 지역적으로는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적지 않은 국민이 급성심근경색 응급진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약 20%는 골든타임 내에 재관류 치료를 하는 병원이 없거나 부족한 사각지대에서 놓여 있다. 사각지대라면 흔히 시골을 떠올리지만 서울 인근 경기도지역도 마찬가지다.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의 사망률이 증가한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운명이 갈린다.

치료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은 생각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가가 지원하는 심혈관응급센터를 18개 정도 추가로 지정해 외상센터처럼 정부가 24시간 365일 운영할 수 있도록 의료인력의 인건비를 지원하면 된다. 이를 통해 전 국민의 90% 이상이 골든타임 내에 재관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시장에 맡기지 않겠다는 발상의 전환만 있으면 가능하다.

반면에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에는 24시간 재관류 치료를 시행하는 병원이 수요에 비해 오히려 많은 것이 현실이다. 공급과잉은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의료진을 소진시킨다. 급성심근경색같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 어려운 경우에 공급과잉은 병원의 수익을 떨어뜨린다. 병원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필요한 만큼 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있는 인력을 쥐어짜서 24시간 365일 응급진료를 이어나간다. 의사와 간호사는 오지 않는 환자를 기다리면서 계속되는 당직으로 심신이 지쳐간다.

병원이 너무 많으면 의료의 질도 떨어진다. 급성심근경색 환자에서 막힌 심장혈관을 뚫어주는 재관류 치료는 시술의 숙련도가 중요하다. 시술건수가 일정 건수 이하면 숙련도가 떨어져 합병증이 많이 생기고 사망률도 높아진다. 병원이 많아도 24시간 응급진료를 하지 않는 병원이 많아져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원되는 환자가 증가해 결국 사망률이 높아진다.

급성심근경색 환자의 생명을 더 이상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 이는 의료양극화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공급과잉을 초래해 환자와 의사, 병원 모두를 잘못된 의료체계의 피해자로 만든다. 국가가 책임지고 모든 국민이 골든타임 내에 재관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심혈관질환 응급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먼저 재관류 치료 사각지대에는 적절한 병원을 심혈관응급센터로 지정하고 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서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도시 공급과잉도 피할 수 없다.

이미 공급과잉 상태에 있는 대도시에서는 순환당직제 등을 도입해 응급의료체계 교란과 의료진의 소진을 막아야 한다.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119 구급대는 치료역량을 갖춘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도록 해야 한다. 이송 중에 의사의 지시를 받아 적절한 응급처치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헬스동아#건강#칼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