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화 한통 걸어 ‘정시 확대’ 요구한 교육부 졸속행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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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최근 서울지역 주요 10개 대학 총장과 입학처장들에게 “현재 고2생들이 대학입시를 치르는 2020학년도부터 정시모집 비중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10년 넘게 수시모집 확대 정책을 펴온 교육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정시모집 확대를 요구한 것이다.

대학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교육부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정시 확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교육부의 재정지원 사업 등에서 배제돼 적잖은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연세대는 2020학년도에 정시모집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혔고 성균관대 경희대 동국대 등 일부 대학은 정시 확대 방안을 논의 중이다. 대입 제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현재 고2 교실도 혼란을 겪고 있다. 수험생 카페에는 “대학에 입학하기 3년 전에 입학전형을 제시해야 한다는 ‘대입 3년 예고제’가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모집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중심의 전형을 극복하고 다양한 재능과 특성을 지닌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됐다. 그러나 긍정적인 취지와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논란이 계속되면서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이란 비판을 받았다. 또 수시가 70% 이상을 차지하면서 수시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정시모집 확대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지만 그 절차는 처음부터 잘못됐다.

교육부가 정시 확대를 요청한 것은 2020학년도 대입 전형안 제출 마감일(3월 30일)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박 차관이 일부 대학엔 전화 한 통 걸어 요청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입시제도 변경은 대학들에 중차대한 사안인데도 교육부가 공개적인 논의도 한 차례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입시제도는 여러 측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즉흥적으로 처방을 내려선 부작용만 가져올 뿐이다. 수시 정시의 비중 문제는 교육부가 조만간 공개할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에 포함되는 사안이다. 정시 확대를 일방적으로 몰고 갈 것이 아니라 개편안 전체 내용과 함께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육부는 지난주 서울지역 주요 대학들에 수시모집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하라고 강요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대학을 쥐고 흔들겠다는 구태의연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는 대입의 큰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선택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
#교육부#대입 정시 확대#학생부종합전형#대학수학능력시험#대입 전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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