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더 평등해야 더 즐겁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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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프랑스에서는 여성이 대형트럭이나 버스를 운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파리 좁은 골목에 들어선 한 대형버스 여성 운전사가 마주 오는 차가 지나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데도 코너를 돌아 여유롭게 지나가는 모습에 감탄한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 도로 운송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은 12만3800명(2014년 기준)으로 전체의 19%에 이른다. 운송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대형트럭 운전사의 경우 1978년 30명에 불과했던 여성의 수는 올 초 현재 8300명으로 늘어났다.

프랑스 여성부와 교통부가 2025년까지 운송 운전자의 3분의 1을 여성으로 채우겠다는 젠더 다양성 증진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남녀 간 직업에 대한 벽이 상대적으로 얇다. 슈퍼마켓 캐셔에 젊은 남자들도 많다.

지난 한 해 성폭력에 고통받던 여성들이 당당하게 나서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으로 뒤덮였던 유럽은 새해 들어 “나도 받겠다”며 남녀 임금 격차 해소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 인식을 했으니 진짜 남녀평등의 길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 28개국의 평균 남녀 임금 격차는 16%다. 그런데 한국은 무려 36.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다. “나도 받겠다” 운동은 한국에서 가장 활발히 전개돼야 할 판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녀 임금 격차 해소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사실 그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대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는 정부 혼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문화나 인식의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조직이나 상사의 눈치가 보인다. 경력 단절에 박탈감을 느끼는 부인들의 스트레스를 받아내느니 육아휴직 하고 싶다는 남편들도 많으나 마음뿐이다. 상대적으로 남성 직업과 여성 직업이 뚜렷하게 나눠져 있는 것 역시 아직 문화나 인식의 전환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늘 꿈꾸는 ‘저녁이 있는 삶’ 역시 제도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긴 노동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71시간으로 세계 2위다. 그러나 한국 취업자 한 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1.8달러로, OECD 35개 회원국 중 28위다.

지난주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했을 때 현지인으로부터 독일 노동자들은 오후 4시면 퇴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독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301시간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짧다. 그러나 독일 노동자 한 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9달러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

독일 현지인은 “그 대신 우리는 회사에 출근하면 딴짓 안 하고 오직 일만 한다”고 했다. 호주에 사는 한 교민도 “한국에 출장 와서 보면 근무시간에 차 마시고 수다 떨고, 인터넷 서핑하다가 일을 늦게 시작하고 대신 야근을 하더라”며 고개를 저었다.

올해는 정부의 제도 변화를 촉구하면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남녀평등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회사 간부들은 부하 직원을 저녁에 붙잡거나 육아휴직에 눈치 주지 말고,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남편들은 부인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고, 여성은 과감히 다양한 직종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노동 이즈 베리 임포턴트(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노동은 더 평등해져야 더 즐거워진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 여성#미투 캠페인#남녀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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