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사람이 먼저인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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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한국 식당에는 있고 프랑스 식당에는 없는 게 있다. 종업원을 부르는 벨이다. 한국에서는 물이나 반찬을 추가로 달라고 할 때도 식탁마다 붙어 있는 벨을 주저 없이 누른다.

프랑스에서는 추가 주문을 하거나 계산을 하려고 해도 종업원과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재촉했다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자리브(J‘arrive·곧 가요)’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다른 일을 먼저 할 게 있으니 기다리라는 거다. 무조건 “미안하다”며 일단 고개를 숙이는 우리 식당 종업원과는 다르다.

“서비스 정신이 없구먼. 배가 불렀네”라고 투덜거릴 수는 있지만 자칫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가는 바로 쫓겨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식당뿐만이 아니다. 마트에서도 숨쉴 틈 없이 빠르게 손을 놀리는 우리나라 캐셔들과 달리 프랑스 캐셔들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손님이나 다른 종업원과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계산한다. 속이 타는 손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로 항의하는 이는 없다.


손님만큼 종업원도 소중하다는 인식, 돈을 쓰는 손님이라도 돈이 사람 위에 있지 않다는 만인의 평등 인식이 프랑스인들에게는 강하게 뿌리박혀 있다. 인간의 가치를 중시한 프랑스혁명의 3대 정신(자유, 평등, 박애)은 국가 정책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철학 나아가 생활 습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각종 사고가 터지면 빠지지 않는 ‘만능 해법’이 CCTV 추가 설치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때려도,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닭장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CCTV 확충부터 외친다. 예방 효과가 크고 범죄 후에도 적발이 쉽다는 장점이 크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이 해법 도입에 프랑스는 신중하다. 계속되는 테러에 CCTV 설치가 늘고는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라는 반론이 여전히 거세다. 인간을 CCTV로 감시해야 하는, 믿지 못할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는 처사라는 심리적인 반감도 크다.

차량 테러를 막기 위해 에펠탑 주변에 유리벽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올해 초 큰 반대에 부닥쳤다. 사람들을 감옥에 가둬놓는 발상이라는 거였다. 마크롱 정부는 최근 초중생의 학교 내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인데 가장 환영할 것 같은 학부모들의 반대가 크다. 실효성도 떨어지는 데다 아이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감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습관은 사람을 사랑하는 박애로 이어진다. 프랑스에서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본 뒤 그 앞에 앉아서 구걸하는 거지에게 아무거나 하나 골라 가라며 자신의 장바구니를 벌리는 이들을 가끔 목격할 수 있다. 학교 가는 아이들이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거지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난민에 대한 거부감은 커지고 있지만 아직도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하는 난민은 수용해야 하고, 받아들인 난민은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우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7년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한국의 강점인 빠르고 효율적인 사회도 좋지만 그 속에서 우리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이 사라져 가는 건 아닌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 대신 서로에 대한 불신이 쌓여 가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당선됐다. 내년에는 서로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높여주는, 사람이 먼저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내 사람만 먼저인 사회는 말고 말이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한국 식당#프랑스 식당#종업원#cctv#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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