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덕]사드 장벽, 넘을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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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차장
김창덕 산업부 차장
LG생활건강은 매출액의 53%가 화장품에서 나온다. 26%는 치약 샴푸 같은 생활용품으로, 21%는 식음료를 팔아 번다.

3월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본격화한 이후 화장품 업계에선 그야말로 곡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라져 국내 면세점에서의 매출이 뚝 떨어져서다. 한류를 등에 업고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화장품 업체들로서는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사태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LG생활건강의 회사 실적이 놀랍다.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 늘었다. 화장품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겨우 3%가 줄었을 뿐이다. 국내 1위 화장품 업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영업이익이 같은 기간 반 토막 난 걸 감안하면 LG생활건강의 성적표는 더 돋보인다.

비결이 뭘까. LG생활건강은 중국 현지에서의 판매량이 늘어 면세점 매출액 하락분을 상당 부분 메웠다고 설명한다.

LG생활건강의 ‘후’는 최근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K뷰티 브랜드다. ‘궁중 한방’이라는 차별화 포인트로 중국 VIP 고객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고급 백화점을 중심으로 중국에서만 172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후’ 브랜드 매출액은 2013년 2000억 원에서 지난해 1조2000억 원으로 뛰었다. 사드 보복이 본격화한 올해 상반기에도 6400억 원어치가 팔렸다. 한국에 반감을 가진 중국 소비자들도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브랜드 파워’가 중국에서 사드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해 냈다는 얘기다.

식당의 성패가 음식 맛에 좌우되듯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로 말한다. 이 단순한 명제는 위기 때 훨씬 선명해진다. 사드라는 위기를 만나 ‘후’ 브랜드의 경쟁력이 빛을 발한 것처럼 말이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최근 인트라넷에 올린 CEO 메시지에서 “날로 복잡성이 높아지는 환경에서 편법을 쓰면 당장은 그 위기를 모면해도 언젠가는 더 큰 문제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기업 본연의 경쟁력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들은 대외적으로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현대·기아자동차가 휘청거리고 있다. 롯데마트는 중국 내 87개 점포의 문을 닫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쏘자 정부는 사드 발사대 4기를 조기 배치하기로 했다. 중국은 더 치졸한 방법으로 경제 보복에 나설 게 뻔하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등 세계 3대 시장 환경이 한국 기업에 모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세계 철강업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좋다는 포스코는 보호무역주의의 덫에 단단히 걸렸다. 권오준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당분간 미국 수출은 포기했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일본은 7월 초 EU와 경제동반자협정(EPA)을 맺었다.

문제를 해결할 지름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낙담해서도 안 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선언’은 한국 기업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다. 삼성은 이듬해 말 무선전화기 15만 대를 불태웠다. 불량과의 전쟁은 삼성이 TV 스마트폰에 이어 반도체까지 세계 1위에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기본으로 돌아가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문영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저서 ‘디퍼런트’에서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을 주창했다. 남이 대체할 수 없는 경쟁력만이 사드의 장벽을, 또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 LG생활건강 화장품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분명히 봤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lg생활건강#사드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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