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꿈을 가진 사람이 그린 나오시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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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건축의 성지, 나오시마… 예술로 승화시킨 건축가 뒤 꿈을 가진 후원자 있어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2000회 설명회 열고 1조 투자
우리에겐 이런 인물이 있을까… 진짜 克日은 문화가 앞서야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여러 해가 걸렸다. 나오시마(直島)에 가보고 싶었으나,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림과 조각 그리고 건축으로 지역발전의 성지(聖地)가 된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늘 시간과 돈이 문제였다. 일본으로 출장 갈 기회가 생겨 용기를 냈다. 오카야마 우노항에서 배를 타면 15분 만에 나오시마에 도착할 수 있다.

항구에 도착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순례객들 같았다. 그들은 외진 섬에서 예술 프로젝트가 이룬 기적을 보러, 혹은 자연을 회복시킨 사람들의 꿈을 공유하고 싶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한 해 90만 명 정도의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베네세하우스에 도착하여 짐을 내려놓는 순간,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의 힘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오랜 거부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곡선을 하나도 쓰지 않았는데, 집은 부드럽고 우아하다. 배를 타고 오던 길, 주변의 원래 바다 경관이 평범 수준에도 못 미치고 멀리 보이는 섬들의 굴뚝으로 보아 예전 이 섬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었는데, 건축가의 힘이 그것을 바꾸어 놓았다.

우선 한국에서 간 여행자들은 나지막한 건물에 당황하게 된다. 우리 같으면 10층 정도의 리조트가 있어야 할 해변에 야트막한 건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도 애국이나 홍보를 의도하지 않고 있지만, 건축의 선과 디테일이 일본을 말해주고, 자연을 인간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수준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섬을 돌아본다. 나도 첫날 덴마크, 캐나다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이튿날 새벽 바닷가를 걸으러 나갔다.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형물 곁에서 사진을 찍고 산책하는 사람들은 모두 유럽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잠시 뒤를 돌아 미술관을 보았다. 건물이라는 걸 지어 놓으면 결국 자연을 망가뜨리고 만다는 수십 년 축적된 나의 편견도 사라졌다. 이 섬은 건축으로 인해 빛나고, 더 아름다워졌다. 예술가들 역시 실험적 작품들로 방문객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훌륭한 건축가는 위대한 꿈을 가진 후원자에 의해 날개를 다는 법. 안도 다다오는 후쿠타케 소이치로를 만났다. 소이치로는 부유한 사람이면서도 ‘나는 자본주의를 믿지 않는다. 공익 자본주의를 믿는다’고 외치며, 산업 폐기물과 구리제련으로 오염된 섬을 예술섬으로 바꿔 놓았다. 그 꿈은 원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부친은 출판교육사업을 하며, 청소년들이 자연 속에서 꿈을 꾸게 하고 싶다고 하다 갑자기 사망했다. 그 꿈을 아들이 실현하였다.

소이치로는 오염된 섬의 절반을 100억 원에 매입했다. 그러고는 20년간 연평균 500억 원 정도의 기부와 투자로 섬을 바꿔 나갔다. 그는 그것으로 세계에서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이 되었고, 지금은 투자금을 거의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해 4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사회공헌으로 기부하고도, 감옥에 가는 일이 허다한 우리네 재벌들이 떠올랐다. 소이치로의 꿈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도시는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완벽히 격리시키고, 욕망을 부추기며 자극하는 공포스러운 장소로 되었다. 쉽게 말해 미쳤다”고 그는 진단했다. 그러고는 대안을 찾았다.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다’는 임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2000회 가까운 설명회를 열었다. 1992년 미술관과 호텔을 결합시킨 베네세하우스를 열고 2004년 지추미술관을 세웠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의 꿈을 알아차렸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는 일본에서 공익자본주의의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자본가가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는 이중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우리에게도 감동적인 지역개발과 사회공헌 그리고 건축물이 더 많아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가 일본을 진정으로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국 문화에서 앞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도 예술섬을 만들겠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떤 섬이 만들어질지 벌써 기대된다. 10년 후에는 우리의 예술섬으로 가서 나오시마를 넘어서는 감동을 느끼고 싶다. 올여름엔 아무래도 휴가를 가지 말아야겠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나오시마#안도 다다오#후쿠타케 소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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