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김동호]해마다 수도를 옮기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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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코리아문화수도 선정위원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코리아문화수도 선정위원
유럽에서는 해마다 수도를 옮기고 있다. 문화수도를. 유럽의 ‘문화수도’ 제도는 유럽을 문화적으로 한 나라로 생각하자는 운동이다. ‘유럽의 문화수도’는 유럽 통합을 지향하던 초창기인 1985년부터 시행되었다. 정치, 경제 이전에 문화부터 우선 한 나라처럼 지내자고 선언한 셈이다.

1985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해 2000년에는 프랑스 아비뇽을 비롯한 9개 도시가 ‘새 천년’을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다. 1999년 동유럽권의 무더기 가입으로 회원국이 갑자기 늘어난 유럽연합(EU)은 2001년부터 매년 2개 도시를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벨기에의 몽스와 체코공화국의 플젠이 유럽의 문화수도다.

영국공보성(COI) 초청으로 1976년 7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를 방문했다. 글래스고는 조선공업이 쇠퇴하면서 인구 급감, 실업자 속출로 도심은 범죄도시, 유령도시로 바뀌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시와 주정부에서는, 우선 도시 주변의 주택 개량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1983년을 기점으로 ‘글래스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Glasgow‘s Miles Better)’ ‘활기찬 글래스고(Glasgow Alive)’란 구호 아래 시정부와 기업인 그리고 주민들이 똘똘 뭉쳐 글래스고를 되살리자는 범시민 운동이 일어났다. 주택개량사업에 착수한 지 14년, 시민운동을 전개한 지 7년 만에 글래스고는 ‘더럽고 위험한’ ‘대책 없는 도시’의 오명을 벗고 ‘1990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탈바꿈했다.

한 번 점화된 시민의 ‘문화도시 만들기 운동’은 문화수도가 된 뒤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2007년 8월, 31년 만에 다시 찾은 글래스고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있었다. 도심은 관광객으로 붐볐고 시민들의 표정은 밝고 활기찼다. 도시전공 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초토화됐던 도시를 문화도시로 바꿔놓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과 함께 글래스고를 문화가 주도한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해마다 수도를 옮깁시다.’

이 문화수도운동이 성공하려면 글래스고의 사례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어느 해 문화수도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도시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문화수도가 되기 위한 과정, 문화수도가 되어 온 도시민이 문화를 맘껏 향유하고 가치를 느끼는 축제의 한 해를 거쳐, 거기서 점화된 문화의 열기가 지속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해 도시를 바꾸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코리아문화수도조직위원회가 추진하는 이 운동은 시의(時宜)에 맞는 바람직한 운동이다. 그러나 이 운동이 성공하려면 전제가 있다. 유럽처럼 도시환경, 문화시설, 문화활동, 신청된 프로젝트의 적정성과 예상효과 등을 기준으로 해서 문화수도로 선정되는 것 자체가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민들의 문화적 노력을 인정받는 것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와 모든 지자체의 동의, 동참과 지원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재정 확충 방안을 민관 협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의 열정과 동참이 수반돼야만 한다.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코리아문화수도 선정위원
#수도#유럽#그리스#영국공보성#문화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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