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능 영어 절대평가, 사교육도 못 잡고 세계화도 역행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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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끝내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절대평가 방식을 확정 발표했다. 현재 중3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2018학년도부터다. 등급을 몇 단계로 어떻게 나눌지도 결정하지 않았지만 수능 개편안은 3년 전에 발표한다는 ‘3년 예고제’에 따라 휴일인 크리스마스에 발표부터 한 것이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단순히 수능 영어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과잉학습을 하고, 학교 교육이 쓰기 읽기 위주로 파행된다는 지적에 따라서”라고 도입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사교육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어 사교육 부담을 대폭 경감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정직했을 것이다. 이미 8월 한양대의 고교생 교사 학부모 대상 설문조사에서 60%가 절대평가와 사교육 줄이기 효과의 관계에 의구심을 드러낼 만큼 이번 수능 영어 개편안은 호응을 못 얻고 있다. 영어 사교육은 다소 줄지 몰라도 풍선 효과로 수학 국어 등으로 사교육 이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벌써 학원가에선 “중학교 때 수능 영어 절대평가 1등급을 확보해놔야 고교 때 국어 수학 과학에 매진할 수 있다”며 ‘입시영어’ 마케팅이 한창이다. 어려서부터 모국어처럼 영어를 익히기 위해, 외국어고나 국제고 진학을 위해 영어 사교육을 받는 수요 역시 줄어들 리 없다. 쉬운 수능에 영어 절대평가로 변별력 확보가 안 된다고 대학에선 영어면접 같은 대학별 평가를 시도할 가능성도 많다.

영어 사교육 부담에 대한 대통령의 걱정을 진정 덜어주려면,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잘 가르치면 된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이 학교 영어교육 개혁을 제쳐둔 채 수능 영어 쉽게 내기, 절대평가제 같은 손쉬운 편법만 내놓은 것은 교육정책의 본말을 뒤집은 것이다. 어떻게 국가 교육정책의 근간이 인재 육성 아닌 사교육비 경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영어는 세계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의사소통 능력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세계은행 교육혁신 심포지엄에서 ‘창의인재 양성교육’을 강조했지만 창의인재도 영어로 자신을 드러낼 능력이 없으면 세계은행 같은 데서 일할 수 없다. 정부가 공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고 국소 처방만으로 사교육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은 단견이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인재양성이 시급한 상황에서 학력의 하향 평준화로 역주행해선 안 될 일이다.
#수능#영어#절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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