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은행장이 토로한 新관치금융의 치욕적인 속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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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임 포기를 선언한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그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내가 연임이 되면 조직이 난장판이 되는 것”이라며 “KB금융 완전히 끝났잖아. KB 임영록, 그 꼴 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에 맞섰다가 퇴진은 물론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 임 전 KB금융 회장처럼 자신도 눈치 없이 연임하겠다고 하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행장은 “민영화된 KB금융은 하영구를 (정부에서) 아무리 밀어도 죽어도 (회장에)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민영화된 은행에는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지만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은 ‘윗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괘씸죄에 걸린다는 뜻으로 들린다. 연임이 예상됐던 그가 털어놓은 소회에 한국 관치금융의 치욕적인 속살이 그대로 보인다. 어제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출신의 이광구 부행장을 포함해 3명을 면접 대상자로 선정했으나 이 부행장이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관측이 이미 2주 전부터 금융권에 돌고 있다. 특정 인사를 미리 점지하고 이 행장을 밀어내려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최근 은행연합회장에 선임된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도 회장추천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사실상 선정이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공식 인선 절차를 무시하고 특정인을 위에서 찍어 내려오자 당초 경합할 것으로 예상된 인사들이 후보를 사양했다. 정권 차원에서 신(新)관치금융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금융 개혁을 아무리 외쳐본들 상식과 동떨어진 인사를 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은행연합회장과 우리은행장을 뽑는 위원회는 형식적인 들러리에 불과한 듯하다. 이것이 과연 박 대통령의 뜻인지 궁금하다.

서금회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 서강대 동문인 박근혜 후보의 캠프에 몸담았던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이 좌장을 맡고 있다. 4개월이나 비어 있던 대우증권 사장에 최근 이 모임 출신인 홍성국 부사장이 선임됐다. 신임 우리은행장에도 서금회 출신이 뽑힌다면 이명박 정부 때 금융 권력 ‘4대 천왕’ 중 3명이 고려대 출신인 것과 다를 게 없다. 박 대통령이 대학 동문들의 ‘일자리 창출’에나 나선다면 어떻게 선진금융을 이룰 수 있을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은행#관치#이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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