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담뱃값 찔끔 올리면 세금 짜낸다는 소리만 들을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정부가 오늘 담뱃값 인상을 발표할 예정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과 부담금을 1000∼2000원 올려 한 갑(20개비) 2500원 선인 담뱃값이 3500∼4500원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민 부담을 생각해 조금씩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담뱃값을 찔끔 올리게 되면 담배 소비를 줄이는 효과는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국민 건강을 위한 가격 인상이라면 단번에 올리는 것이 취지에도 맞는다.

한국은 성인남녀의 흡연율이 4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배에 이른다. 청소년 흡연율은 25%로 다른 나라의 성인 흡연율과 맞먹는다. 국내에서 흡연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연간 5만800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한국의 담배 정책은 너무 느슨하다. 담배 가격은 2004년 500원 인상된 후 10년간 동결됐다. OECD 평균 담배 가격은 7000원이고 노르웨이 호주 같은 나라에선 1만6000원이 넘는다.

담뱃값 인상이 금연 확대로 이어지는 효과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 바 있다. 2004년 담뱃값을 인상했을 때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12%포인트 하락했다. 미국 캐나다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얻었다. 최근 조사 결과 담뱃값이 4500원 이상으로 오르면 담배를 끊겠다는 흡연자가 32.3%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질병 감소와 의료비 절감 같은 긍정적 결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선진국들처럼 담뱃갑에 손상된 폐 사진 등을 포함한 강력한 경고 문구를 넣을 필요가 있다.

담뱃값을 1000원 올리면 세수는 연간 2조∼3조 원 늘어난다. 담뱃값에서 원가와 유통 마진을 제외한 돈 가운데 77%는 지방세로, 23%는 건강증진 부담금으로 사용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의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실시로 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태다. 담뱃값 인상은 지자체를 위한 ‘사실상의 증세(增稅)’이자, 서민 주머니를 털어 세수를 늘린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건강증진 부담금은 대부분 일반 건강보험의 재정을 메우거나 연구개발을 위해 쓰여 실제 금연과 관련된 예산은 연간 총 6조 원의 담뱃세 중 120억 원에 불과하다.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세금은 다른 복지 재원이 아닌 국민 건강에 활용해야 흡연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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