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 낙하산’ 근절 안 하면 KB 같은 사태 또 일어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문책 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금감원은 어제 “국민은행은 주 전산기의 성능과 비용을 이사회에 허위 왜곡 보고하는 중대한 위법 행위를 했다”면서 이들에게 감독 책임을 물어 중징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곧바로 사의를 표했고, 임 회장도 퇴진 위기에 몰렸다.

금감원이 밝힌 허위 보고 실태를 보면 국민은행이 한국의 대표적인 은행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전산시스템의 오류 발생 가능성이 1억 건 가운데 400만 건에 달하는데도 성능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다. 소요 비용도 당초 2064억 원에서 3055억 원으로 늘어났다. KB는 이런 문제를 놓고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측이 편을 갈라 싸우다가 검찰에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으로 내려간 임 회장과, 박근혜 정부 금융권 실세 인맥인 이 행장의 대결이었다.

이번 징계로 KB금융은 역대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금융당국의 징계를 받게 됐다. 초대 통합 은행장인 김정태 행장은 국민카드 합병 과정에서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문책 경고를 받았고, 이후 황영기 강정원 어윤대 금융지주 회장도 줄줄이 징계를 받았다. 그때마다 ‘자리에서 쫓아내기 위한 징계’라는 뒷말이 나왔다. 이 말을 뒷받침하듯 전 정권 때 임명된 회장이 물러나면 새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회사의 경영진이 정권에 좌우되다 보니 간부들은 능력보다 연줄에 목을 매달았다. 최근 국민은행이 임직원들의 횡령 불법대출 등 부정 비리가 잇따르고 수익성이 시중은행들 가운데 꼴찌로 떨어진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국민은행은 자기자본 기준으로 국내 최대 은행이자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는 글로벌 기업이다. 한국의 대표 은행이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허술한 내부 통제로 만년 사고뭉치니 국제적인 수치다. 금감원은 평소 감독을 제대로 안 하다가 여론에 밀려 무리한 중징계를 하거나 시간을 질질 끌어 금융회사들을 만신창이로 만들곤 했다.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금융협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금융권이 보신주의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에 적극 진출하라”고 주문했다. 금융권을 질타하기 전에 모피아(기획재정부+마피아)의 낙하산 인사를 멈춰야 제2의 KB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금융 낙하산#전산시스템#KB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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