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모르는 게 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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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법규를 지키지 않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 범칙금 고지서라도 날아오는 날에는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도대체 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서 4만 원 때로는 7만 원씩이나 되는 범칙금을 내느냐고 한바탕 화를 낸다. 그리고 득달같이 은행에 가서 범칙금을 낸다. 빨리 고지서를 치워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라는 핑계로 심심치 않게 속도위반을 하여 딱지를 받곤 한다.

그날도 귀가하여 남편은 주차하러 내려가고 내가 먼저 집으로 올라왔는데 책상 위에 고지서 한 장이 놓여 있다. “뭐야 또?” 열이 확 올라 뜯어보니 위반 시각이 새벽 두 시였다. 이 시간에 다닌 기억이 없는데 그렇다면 혹시 아들이 한밤중에 아빠 모르게 차를 갖고 나갔었나 싶어 얼른 고지서를 책 사이에 감췄다.

다음 날 아침에 남편 모르게 범칙금을 처리하려고 고지서를 찾으니 어라, 분명 책 사이에 끼워놓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여기 있던 고지서 어디 갔어?”

“어 그거? 그냥 내가 은행에 내려고 했는데.”

당황한 남편은 머쓱해하며 양복 주머니에서 고지서를 꺼냈다. 전날 밤에 내가 서둘러 숨긴 고지서의 한 모퉁이가 삐죽이 나왔던 모양이다. 그걸 본 남편은 잽싸게 낚아채 주머니에 숨긴 것. 혹시라도 내가 보면 열 받을 것을 염려해 슬쩍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럼 아들이 위반한 줄 알고 그냥 넘어가 주려고 했던 거야?”

남편의 교통위반 고지서만 보면 버럭 화를 내면서 아들은 눈감아주려고 했다는 걸 알고 심히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사람 차별한다고 투덜대던 남편은 얼른 다짐을 두었다.

“그럼,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기다.”

위반 시각이 아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이라서 지레짐작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떼인 딱지였던 것. 뒤늦게 화를 낼 수 없어 그날 일은 그것으로 덮었다.

그 사건 이후에는 어쩐 일인지 우리 집에 교통위반 고지서가 오지 않는다. “요즘 내가 워낙 모범적으로 운전하잖아”라고 자랑을 하지만 가끔 남편과 아들에게서 설핏 수상쩍은 고지서 감추기의 낌새를 본다. 그러나 이젠 구태여 캐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자 내가 씩씩거리며 은행으로 달려가는 일도 없어졌고 우리 집 저기압 발생 빈도도 줄어들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윤세영 수필가
#법규#속도위반#범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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