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권영진의 정치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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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와 큰 인연이 없다. 대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초중고교와 대학을 서울에서 다녔다.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한 곳은 청와대였다. 지금 대구에선 박 대통령을 ‘자연인 박근혜’보다는 ‘박정희의 딸’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박 대통령은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서면서 대구와 정치적 인연을 맺는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가 세운 경제, 박근혜가 지킨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달성 출신으로 6공 실세인 엄삼탁 전 안전기획부 기조실장을 투입해 파상 공세를 폈으나 역부족이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브랜드의 정치적 영향력을 입증한 셈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패배한 뒤 한 대구경북(TK) 출신 친박(친박근혜) 핵심은 “우리가 TK에서 정치하려면 ‘박근혜’ 간판을 달고 있어야 한다”고 주변을 독려했다고 한다.

TK 사람들은 “대통령을 5명이나 배출했다”는 자존심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현지에선 “TK 인사들은 한 다리만 건너면 청와대 고위직 인사와 수시로 전화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퍼져 있다. ‘그들만의 폐쇄적 네트워크’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만큼 TK는 여권의 아성이라고 할 만하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40%가 넘는 득표율을 올린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권영진 당선자의 선전을 더 주목하고 싶다. 외지인들은 “새누리당 후보니까 당연히 이기는 것 아니냐”고 쉽게 얘기하겠지만 TK 정서를 감안한다면 권영진 당선은 ‘민란급 이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영진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대구 사회의 주류를 이끄는 이른바 ‘명문고’ 출신이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정치에 입문한 지 10여 년이 됐지만 그의 무대는 서울이었다. 서울 노원구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했지만 대구나 경북에서 지역 기반을 다진 적은 없었다. TK에서 정치적 성공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친박(친박근혜)’ 브랜드도 없다. 6개월 전에 혈혈단신으로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혁신과 쇄신을 외쳤다. “무모한 돈키호테”라는 소리를 들을 만했다. 그가 당내 경선에서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을 꺾고 승리하자 경선일을 빗대 ‘4·29혁명’이란 조어도 등장했다.

본선의 길도 쉽지 않았다. 여야 후보가 뒤바뀐 듯했다. 보수 정당의 권영진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반면, 진보 정당의 김부겸은 책임 능력을 강조했다. 권영진의 승리는 새누리당의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대구 민심에 호응한 결과다.

이변의 전조(前兆)는 있었다. 4년 전 지방선거 당시 박 대통령의 지역구(달성) 군수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떨어지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박 대통령이 직접 상주하면서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오만에 대한 불만이 ‘응징투표’로 연결된 것이다. 민심을 거슬러 역주행하면 TK 민심도 언제든 등을 돌린다는 철칙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새누리당과 친박 간판만 들고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쳤다면 대구 민심은 싸늘하게 등을 돌렸을 것이다.

권영진은 경선에 뛰어들면서 “대구 혁신에 목숨을 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기자와 만났을 때도 “이 초심은 끝까지 가져가겠다”고 했다. 정치인의 일성이 끝까지 갈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권영진의 도전은 새누리당의 본거지, TK의 타성을 깨는 신호탄이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문제로 행보가 엉킨 여권 수뇌부는 ‘권영진의 정치실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박근혜 대통령#박정희#권영진#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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