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16>어린이통장의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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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아내의 저축 습관은 뽀로로통장 덕분이다.

지난 어린이날에도 아내는 두 딸이 할머니에게서 받은 용돈을 챙겨뒀다가 통장에 넣었다. 딸들은 용돈으로 군것질도 못하는 현실을 깨닫고 반항했지만 “너희들 대학 등록금”이라는 엄마 말에 곧 제압당했다. 은행의 어린이적금, 증권사의 어린이펀드, 보험사의 어린이보험 등 어린이통장은 많은 가정에서는 이처럼 ‘엄마 통장’이다.

시간을 되돌려보면 예전 부모들도 아이들을 은행에 데려가 직접 도장을 찍으며 통장을 만들게 했다. 하지만 부모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통에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좌가 유지되는 비율은 극히 낮았다. 교육용이었을 뿐 통장을 물려줄 의도는 별로 없었던 것이다. 반면 요즘 어린이통장은 부모가 목돈을 만들어줄 요량으로 직접 치밀하게 관리하며 꾸준히 돈을 불린다.

어린이통장의 세태가 이처럼 장기불입 추세로 변하다 보니 과거에는 넘어갔던 이슈가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정액 이상의 돈을 다른 사람에게 줄 때 나라에 내야 하는 증여세 문제다. 증여세율은 금액에 따라 10∼50%다.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통장을 만든 뒤 성년이 되기까지 18년 동안 연 3% 이자를 주는 적금에 매달 10만 원씩 넣는다면 2760만 원(복리 기준)의 목돈이 된다. ‘세금 폭탄이라도 맞는 것 아닐까?’

하지만 세법을 조금만 알면 증여세를 크게 줄이거나 전혀 안 낼 수 있다. 현행 세법은 부모가 자녀 생활비와 교육비로 사용하는 비용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또 만 18세 이하인 미성년 자녀에게는 10년 단위로 2000만 원까지 세금 없이 돈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녀가 8세 때 2000만 원을 증여하고, 10년 뒤인 18세에 추가로 2000만 원을 증여하면 비과세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 증여한도는 성년이 되는 19세부터는 10년에 5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즉, 어린이통장 만기 때 증여하는 돈을 전액 교육비로 쓴다면 당연히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자녀가 증여금을 교육비 이외 다른 용도로 쓴다고 해도 비과세 증여한도(미성년 2000만 원, 성년 5000만 원)를 넘지 않으면 세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어린이펀드에 든 지 오랜 기간이 지나 원금 2000만 원에 이자가 1000만 원 붙어 총 3000만 원이 됐다고 하자. 이 돈을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 최초 통장 개설 때 세무서에 ‘자녀 증여 목적으로 통장을 만든다’고 신고했는지에 따라 실제 내는 세금이 달라진다.

세법은 펀드 투자이익 등 원금 이외 수익에 증여세를 매기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에 증여세 신고를 했다면 비과세 증여한도 범위에 드는 원금 2000만 원과 이자 1000만 원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반면 당국에 미리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세무서로서는 전체 증여금액 3000만 원 중 원금이 얼마고 이자가 얼마인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비과세 증여한도에 속하는 2000만 원만 뺀 나머지 1000만 원에 대해 증여세(10%)를 매긴다.

간혹 어린이통장이 있어야 증여세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집에 있는 금고에서 자녀가 5세 때 2000만 원, 15세 때 2000만 원, 25세 때 5000만 원을 꺼내 주면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증여세 규모는 어린이통장 가입 여부가 아니라 증여시점과 금액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증여세 신고방법은 간단하다. 관할 세무서에 가서 신고서 2장을 작성한 뒤 증여 사실을 입증하는 입금증과 전표를 첨부해 내면 끝. 금융회사에서 증여세 신고 대행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창구에 문의하면 편리하다. 보통 3개월에 한 번씩 원금과 이자를 증여 대상으로 신고한다.

사실 어린이통장 자체의 이점은 별로 없다. 은행에서 일반 적금보다 기본금리를 높게 주는 것도 아니고, 펀드를 굴리는 자산운용사가 특별한 투자 노하우를 적용해 수익을 높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부 운용사는 어린이 교육에 부적절한 사업을 하는 주식(가령 카지노회사나 담배회사)을 투자대상에서 빼고 있다. 이런 운용상의 제약 때문에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어린이펀드에 든다면 굳이 어린이펀드라고 마케팅하는 펀드에 들지 말고 10년 이상 수익이 꾸준한 자산운용사의 대표 펀드에 자녀 명의로 가입하라.

어린이통장 중 꼭 하나를 추천한다면 어린이보험이다. 이는 목돈 마련보다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사망보험금을 많이 주는 성인보험에 비해 다쳤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와 입원비를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임신 후 6개월이 되기 전이라면 별도 검사 없이 태아보험에 가입해 만약의 문제에 대비할 수 있다. 어린이보험 가입 때 보험료 일부를 나중에 돌려받는 환급형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데 환급에 얽매이지 말라. 환급률이 높아질수록 보험료가 비싸진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보험료 환급률은 20%가 적당하다.

따지고 보니, 전체적으로 어린이통장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꾸준히 통장 가입이 늘어나는 것은 ‘내 자녀 통장만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부모의 의지 덕분이다. 그렇다면 금융사는 자발적 장기 고객이 많은 어린이통장에 지금보다는 많은 혜택을 줘야 하는 것 아닐까? 단, 어린이 영어캠프 할인 같은 생색내기 행사는 사절이다.

홍수용 기자
#저축#어린이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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