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세월호 이후’ 국정스타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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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관련 대국민담화를 지켜본 일부 여권 인사는 10여 년 전 한나라당의 국가혁신위원회 종합보고서를 떠올렸다. 차기 집권 가능성이 높았던 이회창 총재가 직접 위원장을 맡아 분과별로 중진들을 포진시켜 집권 청사진을 그렸다. 정치권에선 “사실상 ‘정권 인수위원회’ 아니냐”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출범 후 1년 만인 2002년 5월에 나온 보고서의 핵심 키워드는 국가대혁신이었다.

국가대혁신 비전은 한나라당의 2002년 대선 패배로 종이 청사진에 그쳤다. 하지만 여권 인사들은 “국가대혁신이 박 대통령이 강조한 국가대개조와 겹쳐 보인다”고 말했다. 집권 전 비전과 집권 후 시행 계획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시작이 너무 거창하면 자칫 공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대개조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전무후무한 표현이 아니다.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는 아예 ‘제2의 건국(建國)’을 내걸고 분위기를 잡았다. 2년 전 대선 때 돌풍이 불었던 ‘새정치’라는 구호도 요즘 식상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표현이나 구호가 거창하다고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다르게 정치적 후각이 예민한 우리 국민들은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 부처의 무능과 무책임에 상당히 격노했다고 한다. 내부 토의 도중 해양경찰청 이외에 몇몇 부처나 기관 해체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주변 참모들이 수위를 낮추느라 애를 썼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울분을 토로한다고 해서, 강경한 대책을 발표한다고 해서 켜켜이 쌓여온 적폐가 일순간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사슬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혁명보다 개혁이 더 어렵다고 하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고비마다 일반적 예상을 한 차원 뛰어넘는 승부수를 던져왔다. 2002년 한나라당의 당내 민주화가 이슈가 됐을 때 당직(부총재)을 그만두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탈당을 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가 됐을 때도 몇 달 안 남은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기존 중앙당사를 사용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곧바로 당사의 현판을 떼어내 천막 당사로 가버렸다. 적당히 타협하는 기존 통념에 선을 긋는 이른바 ‘박근혜 스타일’이다. 이번에도 박 대통령을 아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의 파장을 고려한다면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평소대로 공을 던졌다. 하지만 대통령은 공이 목표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정교한 실행 플랜을 짜야 한다.

누가 방해해서 일이 안 되고, 어느 정파가 반대해서 손을 못 댄다는 푸념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당장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조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야당의 원내지도부가 호락호락 박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든 싫든 대통령은 국정의 총괄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박 대통령은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 국정운영 스타일을 점검할 때다. 그렇다면 국민들 사이에서 “대통령이 달라졌다, 바뀌었다”는 소리가 나와야 한다. ‘세월호 이전’ 국정운영 스타일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야당과 비주류 인사들에게도 먼저 손을 내미는 적극적 모습도 보일 필요가 있다. 그 변화 속에서 국가대개조 방향을 담은 대국민담화의 진정성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후속 개각이 그 시금석이다. 다시 공은 박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박근혜 대통령#세월호#대국민담화#국가대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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