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개조 위한 인적쇄신, ‘받아쓰기 총리’로는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1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인선할 새 국무총리는 과거의 대독(代讀)총리 의전총리와 달라야 한다. 19일 대(對)국민 담화대로 정부조직 개편이 이뤄지면 새 총리는 국가안전 시스템 구축과 관료사회 혁신을 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맡는다. 대규모 개편이 예상되는 국무위원의 임명제청권도 헌법대로라면 행사해야 한다. 굳이 책임총리라는 명패 없이도 지금까지의 총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개조해 안전한 나라를 만든다는 절체절명의 국정과제를 맡아 새 총리가 행정각부를 통할하려면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이 필수다. 관피아 척결을 비롯한 관료사회 개혁에서 관료조직 내부의 저항과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야당에서 봐도 수긍할 만한 능력과 신념을 갖춘 인물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임기 초처럼 ‘수첩인사’를 되풀이해서는 또 다른 실패가 예고될 수밖에 없다.

출신 지역이나 화합형 정무형 실무형 같은 유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민심의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토대로 장관들을 이끌고 대통령을 소신 있게 보좌할 수 있는 총리가 절실한 때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울부짖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물병을 맞더라도, 의연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진돗개 정신’의 총리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의 담화를 법률과 정책으로 구현하려면 야당의 협조가 절대 필요한 만큼 야당과 소통도 가능한 인사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대통령의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받아쓰기 총리’가 해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여권에서 거론되는 일부 정치인이나 법조인, 관료 출신 가운데 이 같은 자질을 갖춘 인물이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이제는 박 대통령이 법조인 관료 군인으로 한정됐던 인선의 외연을 과감히 넓혀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와 같은 위법 탈법 사항이 드러날 인물도 곤란하다. 그런 총리라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불법과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법을 준수하라고 100만 공무원과 국민에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가안전처를 총리 산하로 두겠다는 박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통솔하지 않으면 국민이 안심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야당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책임총리’에 걸맞은 리더십이 있는 인물을 발탁해 대통령의 내치(內治)를 실질적으로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은 대통령이 내세우는 새 총리를 보고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 여부를 가늠할 것이다.
#인적쇄신#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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