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구현]관료시스템 리셋, 지금까지 상상 못했던 방식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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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세월호 참사로 국민이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심이 너무나 큰 것 같다. 이번 참사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총리나 장관 몇 명을 경질하여 책임을 지우고 돌아선다면 이는 너무나 무책임한 대책이 될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정치, 행정부, 기업 등 전반적인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관료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중앙정부 공무원만 60만 명이고,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을 합치면 수백만 명이 되는 이 거대한 조직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현재 관료제도의 핵심적인 문제는 현장에서 일하는 기관장들이 너무나 무력하고 책임감이 없다는 점이다.

어느 사이에 장관이 대통령 지시 사항을 열심히 메모해 부처에 전달하는 사람으로 격하되다 보니, 그 아래 공무원들은 줄줄이 위만 쳐다보는 허수아비가 된 것이다. 관료제도 개혁의 방향은 일선의 관리자가 책임을 지고 일을 하도록 권한을 주고 동시에 그 공과에 대해 응분의 보상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첫째는 분권화를 해야 한다. 원래 조직에서 집권화와 분권화는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 현장의 관리자가 능력이 없고 윤리 의식이 낮다면 분권화가 단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집권화를 계속 고집한다면 ‘복지부동’의 공무원 문화는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분권화를 하고, 일선 공무원의 자질을 높이며, 특히 성과에 대해 보상을 확실히 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직원 수가 수만 명인 회사도 결국은 100명 내외의 작은 단위 조직이 성과를 내도록 운영된다.

정부도 작은 조직들이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되면 좋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더 위양하고, 중앙정부에서도 개별 부처에 더 많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 공무원 채용도 부처에 권한을 주는 변화가 필요하다. 재정과 공무원 인사를 행정부의 두 부서가 독점하는 구조가 변해야 한다.

둘째로는 공무원 임용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소위 ‘행정고시’로 불리는 5급 공무원 임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에 이 제도는 능력과 사명감을 가진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사회 전 계층에 입신의 기회를 주는 순기능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역기능이 더 많은 것 같다.

행시 출신 고위공무원들은 실적보다는 출신 배경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고, 퇴임 후에는 관련 단체로 옮겨 노후까지 보장받고 있다. 사회는 이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며, 출신 배경이 아니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승진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요구한다. ‘5급 공채’를 폐지하고, 고위공무원을 외부 채용하는 개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문제는 이 제도를 지금 도입하더라도 그 효과가 20년 후에나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는 고위공직자의 임기를 늘려야 한다. 지금처럼 장차관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정도이면 부서를 장악하기도 힘들고, 공과를 물을 수도 없다.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마무리하는 사람이 다르다 보니 업적평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장관 임기가 최소한 대통령 임기의 반은 되어야 한다.

넷째는 정부가 민간의 이익집단에 포획되는 가능성을 축소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로 고위공무원의 산하 단체 취업을 더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지금 중앙정부의 각 부처는 민간 부문을 조직화하고, 그런 조직에 자기 부처 출신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사회 전체를 조직화하고 있다. 또 민간단체나 사업자조합은 이런 전직 공무원을 활용해 손쉽게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한다. 이렇게 맺어진 민관 유착관계가 경쟁을 저해하고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관료시스템은 수십 년 동안 제도가 고착되어 왔기 때문에 개혁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외환위기 때 사회 각 분야가 바뀌었는데 관료들은 거의 책임도 지지 않고 바뀌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지만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봐야 한다.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세월호 참사#시스템 개혁#관료제도#공무원#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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