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대통령에게 바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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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정부와 청와대에 대한 국민 불신이 대통령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통령의 사과 발언에 대해 “내용과 형식 모두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여론이 높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는 사람들의 실망감이 크다.

한 전직 장관의 말이다. “국무회의는 내부 회의다.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려면 기자실에서 하든지…. 형식 내용 무시하고 그냥 사과만 하면 된다는 오만이 보였다.” 사립대 교수는 “사과를 정치행위로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 사과를 하면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권위가 떨어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대통령도 사람 아닌가. 국민 모두가 울고 싶은데 유가족과 손 맞잡고 눈물 흘리면 한이 풀릴 것 아닌가”라고 했다. “공무원을 꾸짖는 내용이 틀리지는 않지만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 과연 이번 일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나 의구심이 들기 때문”(40대 주부)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대기업 임원은 “조직 논리와 공급자 마인드에 갇혀 있던 청와대와 관료사회 문제가 평시에는 잘 안 보였지만 비상 상황이 되니 훤하게 드러났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 눈높이를 안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시민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눠야 하고 귀를 열어야 하며 민심을 가감 없이 전하는 바르고 용기 있는 참모도 있어야 한다. 국무회의에서 혼자 말하는 것을 장관들이 일제히 받아 적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민심이 제대로 전달되겠으며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비상책이 나오겠는가.”

“그동안 대통령 업무 스타일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들이 한꺼번에 진짜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최고책임자가 온갖 것을 지시하면 아래 사람들은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야전 사령관 격인 장관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사고가 나면 책임을 명확히 하는 큰 지침만 내리면 된다. 현장에선 융통성이 중요한데 그런 훈련이 안 되어 있으니 이번 사고 수습 과정에서 우왕좌왕으로 드러난 거다.”(중소기업 사장)

“국가는 거대한 생명체다. 언제든지 사건은 터진다. 따라서 국가원수 입에서 ‘절대’ 같은 단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 문제를 단순화해 해법을 제시하는 게 급선무다. 이번 일도 결국 세 가지로 압축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국민 마음을 달래며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전직 경제부처 장관)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수습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국민에게 직접 설명해 달라. 배를 어떻게 건져낼 건지에 대해서도 이제 서서히 조심스러운 진단이 나와야 한다. 세계의 기술력을 다 모아도 불가능한 건지, 가능하다면 언제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이면서도 진실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이야기해 달라.”(전직 장성)

국가안전처 신설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았다. “관료들이란 사건이 터지면 기구가 필요하다고 들이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부가 커지고 일들이 겹치고 간섭이 늘어난 거다. 중복된 업무를 단순화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하는 일이 우선이다.”(경제연구소장)

“국가 개조는 공무원들 입에서 비명 소리가 나와야 가능하다. 지금 이 위기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남은 임기 동안 아무 일도 못한다. MB정부가 광우병 사태로 발목 잡힌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 국민의 절망과 분노 수압이 너무 높은데 이 물길이 어느 곳으로 갈지 불안하다.”(전직 차관)

지금 대통령은 외로워 보인다. 혼자 극복하려 하지 말고 각계 원로, 국민들로부터 의견을 들어 국난 극복을 위한 여론 수렴에 나섰으면 한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국무회의#국가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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