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현우]6·4 지방선거 연기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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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방선거가 38일 남았다. 지금부터 국민이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 상황에서 한 달여의 시간은 정상적인 선거를 준비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후보자와 정당들도 선거를 대비하기가 너무 빠듯하다. 선거 홍보를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까지 열흘이 걸릴지 20일이 걸릴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사회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간신히 경선 원칙을 확정한 상태에서 며칠 내에 제대로 된 경선을 치르기는 어렵다. 선거는 경쟁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흥이 나는 홍보도 필요하고 후보자가 자기 자랑도 서슴없이 해야 한다. 지금 국민이 선거 정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것은 정치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물론 일정대로 선거는 치를 수 있다. 아무런 사고도 없을 것이고 당선자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내용적으로 정상적인 선거가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큰 비극의 책임이 선거 결과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선거 일정을 고집한다면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이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유권자들이 이번 참사를 선거에 이용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엄청난 반감이 생길 것이고, 이를 우려해 야당은 이 문제를 본격적인 선거 이슈로 제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좀 더 차분히 책임 소재와 그 정도를 따질 시간이 주어진다면 선거에 이번 사건이 반영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선거 연기론이 제기되었지만 양당은 선거를 일정대로 치르기로 결정한 것 같다. 선거 연기를 합의한다면 정당들의 이해득실에 따른 야합이라는 비난을 지레 걱정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은 사고책임론으로부터,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 원칙 철회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선거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떳떳하다면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선거 연기를 제기하고 협의해야 할 것이다. 선거를 미루기 위해서는 법을 손봐야 하고, 현직자의 임기도 늘려야 하는 등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야 간에 빠른 합의가 필요하다.

혹자는 6·25전쟁 때도 선거를 미루지 않았다는 주장을 한다. 1952년 7월 제2대 대통령선거는 당시 전쟁 중이었지만 선거를 통해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한두 달 내에 끝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를 비교하면서 이번 지방선거 연기를 주장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이 유권자들이 정상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과거는 참고사항일 뿐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선거를 미뤄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원래 대선이나 총선보다 낮은데 이번 사태로 인해 한 달 후 선거에서 투표율은 분명히 낮아질 것이다. 자칫 유권자의 절반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침통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선거운동은 위축될 것이고, 유권자들의 무관심 때문에 후보자나 공약 비교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셋째, 선거운동 중 돌출적인 발언이나 행동이 선거판을 좌우할 수 있다. 선거경쟁에서 뒤처진 후보가 다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모든 국민이 예민한 상황에서 후보자 한두 명의 실수나 부적절한 언행이 전체 선거의 판세를 결정할 수도 있다.

전국적인 선거 연기가 어렵다면 안산시만이라도 선거를 미루자. 공직선거법 196조에 따르면 지방선거에 관해서는 관할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협의하여 선거를 연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는 선거다워야 한다. 선거 날을 지키는 것보다 선거 과정이 중요하며, 과정이 정상적이어야 선거 결과도 정상적이 된다. 7월 재·보궐선거와 묶어서 선거를 치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수많은 죽음을 애도하고, 그로 인해 선거가 연기되었다는 기록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전환점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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