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60>그들이 반감을 드러내는 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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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참석한 남녀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일행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여자가 팔을 홱 잡아 빼고는 혼자 걸어간다. 당황한 남자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본다. 뭘 잘못했는지 머릿속을 검색해보지만 데이터를 찾는 데 실패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자 그룹과 여자 그룹이 따로 어울린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아내 또는 여자친구가 그룹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파악하는 것은 평화와 안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그녀의 기분을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끼리 나누는 대화를 지켜본들, 남자 관점에선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 여성 그룹은 대개 다정하고 화기애애해 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면 그들 간에 오가는 대화 이면에 숨은 속내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유용한 기준이 하나 있다. 어지간히 둔감한 남자라도 이 기준을 적용하면 웬만한 상황은 파악할 수 있다. ‘정답 혹은 오답’의 기준이다.

이런 식이다. 한 여성이 특별한 비법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면 다른 여자들이 다양한 방식의 대사를 건네며 ‘알아준다’. 자랑의 당사자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정답 처리다.

하지만 어떤 여성에게는 다른 반응을 한다. “그건 아니다”라거나 “그런 적 없다”며 부정하는 것이다. 불과 1분 전에 모두 동의했던 말도 그 여성의 입에서 나오면 부인당한다. 오답 처리다.

오답 처리 방식도 다양하다. “나도 그걸 좋아한다”고 하면 “사실은 싫어한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전에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 “당신 기억이 잘못된 것”이라고 우긴다. “그거 너무 예쁘지 않아요?” 하고 물을 때는 “별로”라고 해준다.

오답 처리는 일차적으로 나는 당신과 다르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나는 호락호락 볼 대상이 아니니까 마음대로 넘겨짚지 말라’는 경고의 뜻이다. 일종의 경계선 긋기인 셈이다. 오답 처리는 반감의 표현이다. 이 무리에서 당신만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다. 남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꺼지라’는 말이다.

여성은 함께 이야기하며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데서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모임에서 하는 말 족족 다른 여성에게서 블로킹을 당하고 나면 굳이 그런 곳에 데려간 장본인에게까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반감은 표현 방식만 부드러워 보일 뿐, 속에 품은 적대감은 남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내가 오답 처리를 당하고 나서 펄펄 뛸 때 “설마 그런 뜻이겠어?”라며 사람 좋게 웃는 남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뜻, 맞다.

한상복 작가
#여자#반감#적대감#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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