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아, 통곡의 팽목항이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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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칠흑같이 깜깜한 진도 앞바다. 검은 제복의 해경 6명이 들것을 들고 온다. 담요에 둘러싸인 싸늘한 주검이다. 남자 시신은 왼쪽 천막으로, 여자 시신은 오른쪽 천막으로.

‘과학수사 CSI’라고 적힌 제복을 입은 해경이 나타났다. “키는 168cm, 큰 킵니다, 여학생이고 긴 생머리, 우측 턱 선에 점이 있습니다. 까만색 후드를 입었어요.” “다음은 여성이고, 눈 밑에 점이 있고, 여드름이 있어요. 위에 덧니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줄지어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통탄의 곡소리가 진도의 까만 밤바다에 울려 퍼진다. “내 딸 누가 이랬어? 내 딸 살려내! 내 딸, 내 딸….” 통곡하던 어머니는 끝내 쓰러지고 만다. 절규는 증오와 분노로 바뀐다. “내 딸 살리지 못하면 그냥 안 둘 거야, 내 새끼 살려내라고!”

아무도 말을 못한다. 아직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실종자 가족들은 밖에서 눈물만 훔친다. 종합지원센터의 공무원도, 폴리스라인 앞에 선 해경도 아무 말이 없다. 그제 오후 9시 30분부터 다음 날 0시를 넘긴 시간까지 시신은 이렇게 들려오고, 또 들려왔다.

대부분 17세, 꽃다운 나이의 남학생 여학생이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쓰나미가 덮친 것도 아닌데, 대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아이들은 차디찬 진도 앞바다 아래 숨을 거뒀다.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은 모두 서민이었다. 그 잘난 정치인도, 고위 관료도 없었다. 수더분한 옆집 아저씨요, 다정한 아주머니였다. 착한 아이들은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말을 듣느라 배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려 30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하나라도 물어보는 것이 기자의 기본인데, 난 그들에게 입도 떼지 못했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살아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날도 사망자 수를 바로잡아준 것은 정부가 아니라 실종자 가족이었다. 정부 발표보다 2명 적다는 것을 가족들이 잡아냈다. 가족들은 학생들만큼 온순했다. 아무도 폴리스라인을 넘지 않았고, 생떼도 쓰지 않았다. 해경 지시에 너무나 잘 따르는, 준법의식이 강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아직 아이를 찾지 못한 한 아버지가 내뱉는다. “이제 살아있을 거라 생각 안 해요. 하루라도 빨리 시신이라도 찾아야지요….” 더 흘릴 눈물도 없다며 고개를 떨군 그에게 뭔 말을 해야 하나.

신원확인소에서 터져 나오는 이 처절한 비명을, 분노와 절규, 탄식과 노여움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직접 들어야 한다. 가족들에게 물세례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아픔을 보듬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없다. 제주도 수학여행 간다고 배를 탄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찬 주검으로 돌아오는 나라, 아직도 엄마 품에서 꼼지락거리며 어리광을 부릴, 그래서 앞으로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우리 아이들이 얼음장 같은 물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나라, 어른들은 배를 버리고 도망치고, 수습하러 온 고위공무원은 사망자 이름을 뒤로 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나라가 세계 경제 10위권 한국의 현주소다.

나는 두 달 전 팔순 노모를 병환으로 잃었다. 삶과 죽음이 이토록 잔인한지를 그때 처음 깨달았다. 하루를 생활하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어머니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려 운다. 이번에 우리는 아들과 딸을 잃었다. 다 내 새끼 같은 아이들이다. 살아남은 자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평생을 어떻게 가슴에 묻고 살까.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를 어떻게 국가라 부를 수 있나. 지금 그 자리엔 자원봉사자와 기자들만 북적거린다.

―진도 팽목항에서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진도#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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