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원택]反정치는 새정치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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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당 폐지-국회의원 감축
정치권, 여론 비판 직면때마다 위기모면 위해 꺼낸 극단처방
당장은 속시원한 해결책 같지만 사회적 대가 지불이 역사의 교훈
정당공천이 여러 문제 있지만 폐지만이 새정치라 볼 순 없어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입니다”라는 큼지막한 문구 옆에 안철수 대표와 함께 찍은 후보자의 사진과 이름이 바람에 날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가 내건 현수막의 모습이다.

이 현수막에 걸린 구호와 사진이야말로 최근까지 안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이 처했던 난감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초단체 선거에 정당 공천을 안 하겠다고 하니 정당 명칭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대신 안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소속을 알아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이런 모순이 결국 안 대표로 하여금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라는 출구전략을 통해 정당 무공천의 입장을 철회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사실 안 대표에게 기초단체 선거에서의 정당 무공천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대선 때 주요 정당 후보들이 모두 기초의회 선거에 정당 공천을 안 하겠다고 공약했으니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독자 신당 창당을 모색했을 때 안철수 의원의 주장이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이를 수용하면서 합당의 명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더욱이 ‘새 정치’를 외친 안 대표 처지에서는 합당 이후 기존 정치권과는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줘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확산되는 정당 공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새 정치는 무엇일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해보게 됐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지방선거에 정당이 공천을 포기해야만 새 정치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정당 공천으로 인한 문제점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역주의 정당 정치 때문에 특정 정당의 강세 지역에서는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의미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로서는 공천을 받기 위해 정당과 해당 지역 국회의원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당 공천이야말로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게 만든 원인이라는 비판은 나름대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해도 정당 공천을 아예 폐지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 처방만이 능사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정치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제기될 때 이를 모면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극단적 처방을 들고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구당 폐지가 그 대표적 사례다. 과거 지구당은 그 운영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돈 먹는 하마’로 불렸고 정경유착과 정치 부패의 주범으로 비판받았다. 이러한 문제점이 제기됐을 때 정치권의 대응은 지구당을 아예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은 못하고 싸움질만 하거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국회의원 수를 아예 100명 줄이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러한 극단적 처방은 모두 정치의 순기능을 부정하고 정치의 영역과 기능을 축소하려는 반(反)정치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처방은 당장 듣기에 속 시원하고 가장 분명한 해결책 같지만 그로 인한 반대급부를 반드시 사회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지구당 문제만 해도 폐지하지 않았더라도 정치자금 규제를 강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도 상당한 개선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이제는 하위 지역 단위에서의 정치 활동이 제약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정당의 조직적 기반도 전반적으로 약화됐다. 정치개혁이나 새 정치라는 명분하에 이뤄진 것들이지만, 이러한 극단적 처방은 우리 정치 발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채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만연한 불신에 편승한 무책임한 대중영합적 행위나 다름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벌어진 무공천 여부를 둘러싼 이번 사달 역시 마찬가지다. 정당 공천이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고 해도 이를 폐지하는 것만이 새 정치라고 볼 수는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 정치는 정치를 부정하고 그 손발을 묶거나 자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에 대한 애정을 갖고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해 나갈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다.

그동안 ‘새 정치’는 안철수 대표를 정치적으로 상징하는 가치였다. 안 대표가 생각한 새 정치가 혹시 반(反)정치적 정서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강원택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angwt@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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