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통일대박’을 위해 치러야 할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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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현재 도박사들이 평가하는 브라질 월드컵의 한국 우승 확률은 0.5% 미만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월드컵 우승은 대박”이라 말한다 해서 문제 삼을 것은 없으리라. 다만 그 경우 “한국이 우승했을 때의 경제적 효과”부터 계산하기 시작한다면 순서가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도 마찬가지다. 아직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언제쯤 통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국 사회엔 통일이 되면 경제규모 세계 8위, 국민소득 8만 달러와 같은 장밋빛 계산만 넘친다. 그렇게 될 확률은 누구도 모른다.

지난 회에서 통일로 초래될 문제점을 칼럼으로 쓴 뒤 독자들로부터 “그럼 최선의 통일방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남북이 다 같이 윈윈할 수 있는 최상의 통일방식을 마련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다만 그대로 집행하기가 너무 어려울 뿐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한국의 통일정책은 일관성을 지키기 너무 어렵다. 정권에 따라 좌와 우로 오간다. 대통령이 지지율과 지지계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이 신뢰가 없다고 하지만, 북한도 5년마다 대북정책이 달라지는 한국 정부를 신뢰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둘째로 통일정책은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통일방안을 만들어도 북한은 “저런 방법으로 우릴 무너뜨리려 하는구나”라고 받아들여 기를 쓰고 방해만 할 게 뻔하다. 셋째는 북핵 문제이다. 이상적인 통일방안과 핵을 폐기하기 위한 방안이 상충되면 무엇을 앞세울지를 놓고 한국의 여론이 먼저 분열될 것이다. 북한이 끝까지 핵을 움켜쥐겠다면 아무리 좋은 통일정책도 기를 펼 수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상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기보다는 그것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기가 백배는 더 어렵다. 더 나아가 우리에겐 지금 통일방안조차 없는 상태다.

올해 1월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하지만 ‘통일대박론’이 다음 정부에도 계승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올해 1월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하지만 ‘통일대박론’이 다음 정부에도 계승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통일을 떠올릴 때 경제적 대박보다 더 중요한 관심 요소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통일로 국민소득이 8만 달러가 된다고 해도 개개인이 행복하지 못한다면 통일의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2005년 12월 한국의 무역규모 5000억 달러 돌파 소식이 언론의 톱뉴스로 다뤄졌다. 그리고 불과 6년 뒤 다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수출규모 7위, 무역규모 8위의 강대국이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 행복도가 2배로 높아졌을까. 시대의 패러다임이 성장과 분배에서 바뀌고 있는 것도 결국 “경제는 잘나간다는데 나는 왜 체감하지 못하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통일 한국 역시 경제규모와 국력은 지금보다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개인들의 행복으로 쉽게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확신은 할 수 없다. 행복은 인내와 노력 없이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남북통일이 되면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겠다며 바람을 잡는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로저스홀딩스 회장)의 발언에 환호한다. 허나 우리는 로저스가 아니다. 통일이 되면 대박을 맞을 사람들은 분명히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일단 크게 늘어난 세금 고지서부터 받게 될 것이다. 문화와 사고방식이 너무 다른 북한 주민과 이웃으로 살면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 이 외에도 예상되는 어려움은 너무나 많다.

통일은 초기에 남쪽 사람들에겐 경제적 희생을, 북쪽 사람들에겐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정신적 희생을 요구한다. 통일시대의 이상적인 지도자는 국민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인내하고 결집하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통일은 통합에서 시작해 통합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전쟁의 폐허와 혹독한 가난을 딛고 일어선 민족이니 통일이 되면 어떤 상황도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믿는 낙관론자도 꽤 많다. 나도 이 낙관론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처음은 어렵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은 어떻든 더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문제도 통일이 되면 의외로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한국의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들의 소득을 단기간에 끌어올릴까 고민하지만 통일이 돼 북한 주민들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일하게 된다면 소득격차는 빨리 줄어들지도 모른다. 다만 장기적으로 북한 지역의 공동화(空洞化)라는 만만찮은 부작용도 있다. 그러니 통일은 닥쳐 봐야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통일은 싫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 체제의 지속 여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충격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론 통일 과정을 ‘출산 과정’에 빗대고 싶다. 준비할 때에는 희망과 설렘, 근심의 감정이 교차하는 ‘잉태의 인내’라면 통일의 순간이야말로 분만에 비할 수 있는 엄청난 고통과 혼란의 순간이 될 것이다. 또 통일 초기는 갓난이를 젖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잠을 재우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유아를 길러내는 일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흘러 보내고, 하루에도 열 번씩 미웠다 고와졌다 하는 자식의 성장기를 거쳐 오랫동안 함께 부대껴 사노라면 어느 순간 있는 정 없는 정이 들기 마련이다. 자식이 다 자란 뒤에야 비로소 흘러간 세월을 돌이키며 “그래도 자식 낳기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바로 그런 것이 통일이다.

통일 한국이 효자가 될지, 불효자가 될지는 앞으로 우리가 쏟아야 할 인내와 희생에 비례함을 ‘대박’이란 단어와 함께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박근혜 대통령#통일 대박#통일정책#경제적 희생#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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