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초연금 타령 속에 서럽게 세상 등진 가난한 이웃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5일 03시 00분


서울 송파구 반지하 셋방에서 세 모녀가 마지막 월세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쪽지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마포구 단독주택 1층 셋방에선 60대 노인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쪽지를 남긴 채 숨져 있었다. 최근 일주일 사이 곳곳에서 생활고와 장애, 질병에 고통 받다 삶을 포기한 안타까운 사건이 이어졌다. 어떤 경우라도 자살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4000달러, 연간 복지예산 100조 원인 나라에서 아무런 국가 지원도 못 받고 극단적 선택을 한 국민이 있다는 것은 사회복지 시스템이 헛돌았다는 뜻이다.

세 모녀 가정은 30대의 큰딸이 병으로 거동을 못했고 작은딸은 언니 간병에 꼼짝 못해 61세 어머니가 식당에서 버는 돈으로 근근이 살았다. 하나에 600원인 라면 개수까지 꼼꼼히 적은 가계부는 이들의 서러운 삶을 증언한다. 1월 말 어머니가 팔을 다쳐 일을 못하게 되면서 세 모녀는 곧바로 극단으로 내몰렸다. 현행 복지제도로만 보면 이들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될 수 없다. 그래도 갑자기 근로능력을 잃거나 재난을 당한 사람을 위한 ‘긴급지원 제도’를 알았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있는 복지제도도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작년 5월 국무조정실은 국무회의에서 “올해 맞춤형 복지전달체계 등 3개 난제 해결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문서로 진행하는 행정을 떠나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현실에 맞게 바꿀 것을 지시했다. 국무조정실은 지금까지 대체 뭘 했는지 묻고 싶다.

정치권도 표가 되는 복지만 선심 쓰듯 풀기에 바쁘다. 기초연금만 해도 하위 70% 노인에게 국민연금과 연계해 월 10만∼20만 원을 주겠다는 정부-새누리당 방안에 민주당은 하위 80%에게 20만 원 일괄지급 요구로 맞서고 있다. 하위 70%면 근로소득 172만 원, 하위 80%면 348만 원 소득이다. 꽤 여유 있는 노인층에까지 평생 연금을 주겠다며 여야가 한가하게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뒷전에서 복지제도가 정말 절실한 사람들은 외롭게 한 서린 세상을 등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3월 한 달간 복지 사각지대 일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이에게 퍼주는 복지가 아님을 일련의 비극이 말해주고 있다. 사회복지 시스템은 꼭 필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이 전달되도록 정교하게 설계해 막힘없이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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