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포스코 권오준, KT 황창규의 3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권오준 포스코 기술총괄 사장이 차기 회장에 내정된 것은 이변이었다. 미국에서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중간간부로 입사한 그는 포스코의 주류(主流)와 거리가 멀었다. 2년 전 사장으로 승진했지만 경영책임과 권한이 큰 등기이사도 아니었다. 프로야구 팬이라면 권오준이라는 이름에서 삼성 라이온즈 투수를 떠올릴 것이다. 재계나 언론계에서는 권 회장 내정자(이하 회장)보다 동생인 권오용 효성 홍보총괄 고문의 인지도가 높다.

‘깜짝 인사’의 주역은 이영선 포스코 이사회 의장(전 한림대 총장)을 비롯한 사외이사 6명이었다. 이 전 총장은 최고경영자(CEO) 추천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권 회장을 선택한 이유를 필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조직관리 경험이 적은 약점은 있지만 철강과 기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습니다. 글로벌 마인드를 갖췄고 회사 내부의 파벌 갈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강점이었죠.”

지난해 12월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한 KT에서도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이 컸다. CEO 추천위원장인 이현락 세종대 석좌교수 등 사외이사들은 후보 면접에서 황 회장의 통찰력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그는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는 점이 지적됐지만 다른 평가지표들에서 훨씬 앞서 추천위원 전원의 지지를 얻었다.

포스코와 KT는 최근 몇 년간 사업 다각화를 내걸고 인수합병(M&A)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본업(本業)인 철강과 통신 분야 경쟁력이 추락했다. 권오준 황창규 회장은 주력 업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면서 신규 계열사들의 현주소를 냉정히 평가해 옥석(玉石)을 가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포스코는 5년 전 정준양 회장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지지파와 반대파의 갈등으로 내내 몸살을 앓았다. KT 역시 오래전부터 뿌리 깊은 파벌 간 알력에 시달렸다. 올해로 민영화 12년(포스코)과 14년(KT)을 맞는 두 회사를 거쳐 간 경영자 중 상당수가 본인의 연임을 위협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임원의 중용을 꺼려 ‘차세대 CEO 풀’을 좁혔다는 말도 들린다. 권오준 황창규 회장이 조직 내 갈등을 줄이고 ‘큰 싸움’을 제대로 할 역량을 갖춘 인물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인사개혁에 성공할지도 눈여겨볼 포인트다.

역대 정부는 포스코와 KT의 민영화 이후에도 노골적으로 CEO 선임에 개입했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정권이 공공연하게 낙점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사외이사들과 정부 사이에 차기 회장에 대한 암묵적인 교감이 이뤄졌을 수는 있다고 나는 본다.

재계 서열 6위인 포스코와 11위인 KT는 한국의 산업과 안보 측면에서 모두 소중한 기업이다. 정부나 정치권도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우선 회장이 외풍(外風)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들과의 협력은 중요하지만 선임 과정에서 빚을 졌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의 입김에 휘둘리는 것은 금물이다.

KT 황 회장은 이틀 뒤인 27일, 포스코 권 회장은 3월 14일 주주총회를 거쳐 3년 임기의 회장에 공식 취임한다. 민영화 이후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아름다운 퇴장’을 한 CEO를 찾기 어려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선례를 만들 수 있을지 지켜볼 것이다. 그들이 경쟁력과 투명성을 높이는 개혁에 실패하고 전임자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는다면 지금 주변에서 쏟아지는 축하와 박수는 몇 년 뒤 비난과 성토로 바뀔 수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권오준#포스코#황창규#K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