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교육감 임명제로 가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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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이후 교육 곳곳 이념의 싸움터로 변질… 불 지른 진보 진영의 책임 커
로또 선거, 과도한 비용… 지자체 내부 충돌 등 폐해 심각
민선 지자체장이 직접 임명해 교육까지 책임지기를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진보 교육감은 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와 전교조 출신 중에서만 나오는지 궁금했다. 역대 서울시교육감 직선제 선거에서 진보 좌파 진영을 대표해 출마했던 후보들은 주경복 곽노현 이수호 씨 등 3명이었다. 주경복 곽노현 씨는 민교협의 중심 멤버였고 이수호 씨는 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다. 두 단체는 한국 사회의 이념 지형에서 왼쪽에 치우쳐 있다. 반미 친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진보 진영에도 이들 단체 소속이 아닌 명망가들이 있을 법하지만 후보들은 대부분 두 단체에서 나왔다.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후보와 진보 후보 단일화를 했던 박명기 씨가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는 후보 사퇴의 대가로 2억 원을 받아 1년 6개월을 복역한 후 지난해 2월 출소했다. 박 씨는 “좌파 단체들이 후보 선출을 주도하면서 이념적 성향이 뚜렷한 인사를 내세운다”고 증언한다. 당시 곽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은 각종 시위 때 단골로 등장하는 박석운 진보연대 공동대표였다. 단일화를 발표하는 자리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근 목사 등 이른바 ‘진보 원로’들이 배석했다.

이런 배경을 등에 업은 진보 교육감들이 진영 논리에 매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지역을 ‘진보 교육감 벨트’라고 부르며 처음부터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정부 교육정책에 번번이 반기를 들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훼손한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는 차일피일 미뤘다. 가뜩이나 빠듯한 교육청 예산을 무상급식에 몰아주는가 하면 학생 쪽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학생인권조례를 강행해 교실의 혼란을 초래했다.

이에 맞서는 보수 진영도 체통을 집어 던졌다. 정부는 진보 교육감의 정부 정책 거부에 소송으로 대응했다. 2012년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거의 노골적으로 문용린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한 세트임을 드러냈다. 상대방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나오는 만큼 보수 진영도 같이 움직였다. 교육감 직선제 이후 교육현장은 이념의 싸움터로 변질됐다. 그 책임은 먼저 불을 지른 진보 진영에 있다.

교육감과 지방의회의 성향이 각기 다른 서울에서는 연일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와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사사건건 맞선다. 급기야 서울시의회가 바꾼 서울시교육청 올해 예산안을 서울시교육감이 거부하는 ‘부동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2007년 시작된 교육감 직선제는 교육의 정치화를 비롯해 지자체 내의 충돌 문제, ‘로또 선거’, 과도한 선거비용 등 각종 폐해를 드러냈다. “지역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을 주민 손으로 뽑자”는 솔깃한 취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에 불과했다. 최근 한 조사에서 교사의 63.8%가 현행 교육감 직선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누구보다 교실 사정을 잘 아는 교사들의 판단이 옳을 것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교육감 선출 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교육감 후보가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나서는 방안, 선거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공영제, 선거용지를 원형으로 만들어 후보 이름을 부채꼴로 배치하는 아이디어 등이 나온다. 그러나 현재의 부조리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줄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나은 방안이 많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임명제다. 시도지사가 자신의 임기와 함께할 교육 책임자를 고르는 방안이다. 선출직인 시장이나 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그런 논리라면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을 임명하는 일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지자체장의 책임 중에는 주민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일도 들어 있다. 또한 지자체와 교육감이 함께 움직이면 서울시에서와 같은 극한 대립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야권에도 불리한 방안은 아니다. 국내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여야는 시도지사를 나눠 갖게 된다. 야권은 승리한 지자체의 교육감을 임명할 수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자체장이 자신의 업적과 교육의 안정성을 생각한다면 급진 성향의 인사를 교육감 자리에 앉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향후 4년을 책임질 교육감을 새로 뽑는다. 시행착오는 지금까지로 족하다. 새로운 선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념 대결로 교육을 망치는 일이 더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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