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병준]천박한 대의정치, 경박한 SNS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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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도-양당정치 기득권 빠져 서로 삿대질, 진영 논리만 주장… 법안 처리엔 무관심한 정치권
‘철도-의료 개혁’ 괴담만 난무… 인터넷도 합리적 토론은 실종
우리 정치, 데모크라시 아닌 소음만 난무하는 디노크라시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우리 정치가 문제다. 정치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위한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행위이자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먼저 간접민주정치로서의 대의정치 부분을 보자. 지난 정기국회는 폐회 며칠 전까지 법안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폐회를 앞두고 ‘합의 날치기’로 일부 통과시키긴 했다. 그러나 그나마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큰 문제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정치인 몇 사람 욕하고 말 일이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의회제도 그 자체부터가 문제다. 오늘날 의회가 처리할 정책문제는 대량으로 발생한다. 미국의 경우 의회에 제안되는 법안이 한 해 4000건, 우리도 3500건 정도가 된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숫자다. 반면 의회는 대화와 타협의 장이다. 뭐든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

많아지기만 한 게 아니다. 그 속에 포함된 이해관계 또한 복잡해졌다. 처리에서 높은 전문성과 신속성을 요하기도 한다. 대립과 갈등이 내재된 복잡한 문제들을 신속하게 처리한다? 그것도 대량으로? 원천적으로 날치기와 벼락치기가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의회는 이제 박물관으로 갈 때가 되었다. 농경(農耕)시대의 유물이다.’ 약 25년 전 앨빈 토플러가 한 말이다. 직접민주정치의 성장 가능성을 두고 한 말이지만 이런 점에서도 유용한 말이다.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정당들의 정책역량이 높아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방분권을 통해서, 또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갈등조정기구를 잘 정비해서 권한을 대폭 넘겨줘도 좋다. 그렇게 되면 의회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그 기능과 정당성을 유지하게 된다. 다른 나라에서 다들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다. 지역구도와 양당정치가 주는 기득권에 빠져 진영논리를 재생산하느라 바쁘다. 네 편 내 편 만들고, 그 위에 올라타 상대를 공격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며 서로 같은 얼굴을 보면서 조롱하고 비난한다.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많은 의회제도에 이들의 이런 유치함이 겹쳐졌다. 뭐라 할까? 천박함이라 하자.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이렇게 해서 천박해졌다.

직접민주주의로서의 참여정치 부분도 문제다. 더 잘난 게 없다. 특히 트위터 등 참여정치의 근간이 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그렇다. SNS 자체는 더없이 소중한 수단이다. 정보 생산과 공유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즉흥적이고 정서적이다. 또 익명성이 높다. 대개의 경우 깊은 성찰이나 논의 없이 정서에 맞는 메시지를 던지거나 전달한다. 따라서 왜곡이 일어나고 전파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합리적이고 진지한 토론이 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경박성이다.

얼마 전의 철도파업과 이번의 의료개혁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부이겠지만 찬반 양쪽 모두 괴담에 가까운 자료들을 흘리며 합리적 토론을 방해했고, 또 하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가 높으면 이런 왜곡현상이 제어될 수 있다. 사회적 공론의 장이 넓게 열려 있어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대의정치의 천박함과 SNS로 대표되는 참여정치의 경박함이 우리 정치의 본질이 되고 있다. 늘 시끄러운 소음(din)에 일은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디노크라시(dinocracy), 즉 소음민주주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치의 목적, 즉 우리 사회를 위한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결정의 가능성이 약화되고 있다.

새 정치든 개헌이든 다 좋다. 하지만 물어야 할 것들을 제대로 물어 주었으면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위한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결정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까?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 새 인물을 찾고 새 정당을 만들기에 앞서, 또 헌법 조항 하나 바꾸기에 앞서 이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개혁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질문 속에서 정책문제와 정책환경의 변화, 의회제도의 한계와 새로운 거버넌스 구조, 그리고 사회적 담론 수준의 향상과 SNS 문화의 변화 등의 문제를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정치를 디노크라시로부터 구해야 한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대의정치#정기국회#법안#참여정치#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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