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릴레이 특별기고/김대기]전쟁 아닌 재정파탄으로 나라 망하는 시대, 복지포퓰리즘 이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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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경제 퀀텀 점프(대도약)를 위한 제언

김대기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김대기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1980년대 후반 소련이 무너진 이유는 미국의 ‘별들의 전쟁 계획’(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때문이라고 한다. SDI란 대륙간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이다.

구소련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SDI에 대항하려고 국방비를 무리하게 늘렸다가 재정이 파탄 났다. 재정이 무너지니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다. 고갈된 재정을 메우려고 돈을 찍어댔다. 결과는 엄청난 인플레이션. 1991년 5000루블로 자동차를 살 수 있었지만 1993년에는 초콜릿밖에 살 수 없었다고 한다. 1994년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1998년 국채 디폴트를 선언했다. 예금 동결, 개인금고 재산 몰수 등 초강경 조치가 뒤따랐다. 국민의 삶은 벼랑 끝까지 몰렸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겠다. 1990년대 중반 국내 술집에 러시아 여자들이 많이 진출했던 것을. 나라가 망하니 여성들이 이 한국에까지 와서 영업했던 것이다. 이때가 러시아의 암흑기였다. 다행히 자원이 많은 러시아는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한 덕택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에게는 끔찍한 경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스는 1980년까지 일본과 1, 2등을 다투던 우량 국가였다. 1981년 사회당(PASOK)이 복지시책을 남발해 정권을 잡았다. 다른 정당들도 질세라 복지 경쟁에 합류했다. 보수당인 ‘뉴 데모크라시’까지 가세하면서 국가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

부채는 대부분 해외 차입금이었다. 2002년 유로존에 가입한 후 독일, 프랑스 등과 동일한 ‘유로화’를 사용하니 해외 자금 유치는 더욱 쉬워졌다. 낮은 금리로 민간부문에 유입된 넉넉한 자금은 흥청망청 소비경제로 이어졌다. 결국 무역 적자가 커졌다. 국가 부채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만약 그리스가 옛날처럼 자국 화폐인 ‘드라크마’를 사용했다면 환율의 절하가 사전 경고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력이 강한 나라들과 유로화를 함께 사용하는 바람에 심각성은 묻혔다. 아무도 그리스 국채를 사주지 않았고, 금리는 치솟았다. 필요한 물자를 수입할 돈이 없어 물가는 폭등했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이상의 두 나라는 국가재정이 무너져 나라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는 세계 경제에 경종을 울렸다. 전쟁이 아니라 국가재정 파탄으로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선진국들은 앞다투어 부채 줄이기에 나섰다.

2012년 우리 정치권이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는 경쟁을 할 때 영국의회는 대학 등록금 상한을 3배로 올리는 결의를 했다. 우리 정치권이 기초노령연금을 2배 올려주겠다고 호언하는 시기에 1인당 소득이 8만 달러가 넘고 국가 채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55%밖에 되지 않는 노르웨이는 1963년 이후 출생자에 대해 기초연금제도를 폐지했다. 대규모 석유기금이 있었지만 노령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세계 최대의 복지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도 이미 1998년 기초연금 제도를 폐지하고 저소득 노인에게만 선별 지원하고 있다.

최대 부채 국가인 일본은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소비세를 두 배로 올린다. GDP의 230%가 넘는 부채를 줄이지 않고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 지금은 금리가 거의 0%이고 국채의 94%를 국내 금융기관이 사주니까 가능하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목표대로 경제가 활성화돼 2% 인플레가 발생하면 국채 금리도 최소한 2%는 돼야 한다. 그러면 총예산의 약 12%가 국채 이자로 나가야 한다. 우리의 국방비 비중과 거의 같다.

금리가 오르면 국채를 보유한 금융기관의 자산가치도 폭락한다. 세금을 올려서라도 부채를 줄여야 하는 이유이다. 미국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늘어난 국가부채 때문에 여야 간 대립이 심하다. 미국이 일본 재무장을 용인해 중국을 견제하는 거나 이란과 적극 협상을 벌이는 기저에는 부채 줄이기 노림수가 깔린 게 아닐까.

대부분의 선진국이 국가 부채 축소에 주력하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뒤늦게 무상이니 반값이니 하는 복지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모두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빚으로 추진되는 사업들이다. 다행히 아직은 국가 부채가 많지 않아 괜찮지만 포퓰리즘 경쟁이 계속된다면 이겨낼 수 없다. 선진국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건만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고령화와 통일을 생각하면 복지 포퓰리즘은 피해야 할 가장 큰 덫이다.

김대기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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