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교사의 거울, 학교의 겨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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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교사’ 도입
일자리 늘리기 정책에 꿰맞춘 비교육적 제도임이 분명
그러나 교사들 책임은 없나… 거울이 될만한 교사는 사라지고
학교는 겨울을 맞은 지 오래… 그 빈틈 노린게 이 제도 아닌가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교육계에 논쟁거리가 또 하나 등장했다. 정부가 내년 2학기부터 600명, 2017년까지 3500명을 채용하겠다는 ‘시간선택제 교사’ 정책이다. 시간제 교사는 법정근로시간의 절반인 하루 4시간만 근무하고 임금은 그만큼 덜 받는다. 신분은 전일제(全日制) 교사처럼 정규직이고 정년과 각종 혜택을 보장받는다. 그 점에선 비정규직인 기존의 ‘기간제 교사’와도 다르다. 매우 독특한 교사가 등장하는 셈이다.

교육자의 책임은 점점 줄어들어 왔다. 스승은 학교 밖까지도 책임졌고, 선생님은 학교 안까지는 책임졌는데, 교사들은 자기 교실만 책임지고, 강사는 자기 과목만 책임진다. 강사는 학교 밖 사교육 시장에 존재하기에 별 문제가 안 됐다. 그런데 시간제 교사는 교사와 강사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교실의 반만 책임지면 된다. 반쪽 책임이 가능한지도 불분명하지만.

교육 현장이 환영할 리가 없다. 한국교총이 지난달 유·초·중·고교 교원 4157명을 대상으로 이 제도의 찬반을 물었더니 반대가 82.7%나 됐다고 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장기적으로 정규 교원 정원이 줄어들고, 운영상에도 문제가 있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반대 이유는 시간제 교사에게 생활 지도, 진로 상담, 학부모 면담 등 교사의 또 다른 책무를 기대하기 어렵고, 담임과 행정업무 등의 부담이 다른 교사에게 전가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강사’처럼 4시간만 수업하고 쌩하고 집으로 가 버리면, 수업 외에 학교에 잔뜩 쌓여 있는 ‘교사’의 일은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갈등이다.

박근혜 정부는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2017년까지 238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중 92만 개가 시간제다. 시간제 교사는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교육적 판단보다 정책적 고려를 우선한 게 분명하다. 교육부는 이 제도가 교육의 질과 학교 운영의 유연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한다. 현장 분위기는 앞서 말한 대로 정반대다. 이 제도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도와준다고도 하지만 교직사회는 이미 출산 육아 등에 따른 경력 단절이 다른 직역보다 적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교총 조사를 인용하자면 여교사가 남교사보다, 경력이 짧은 교사가 경력이 긴 교사보다 반대가 더 심하다는 사실이 교육부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시간제 일자리가 92만 개나 되는데 교사 3500명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5월 말 현재 국가 및 지방 공무원을 통틀어 시간제 정규직 공무원은 163명(시간제 계약직은 3529명)에 불과하다. 교사 말고도 시간제 공무원을 4000명이나 새로 뽑는다고 하니 공직사회의 큰 변화다.

그렇다면 시간제 교사 제도를 버려야 하나.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이달 초 전국의 20세 이상 직장인과 대학생, 구직자 1467명을 대상으로 ‘올해 취업시장 이슈’를 조사해 봤다. 복수응답이었는데 1위(45.5%)로 꼽은 것이 ‘시간제 일자리의 등장’이다. 특히 50대와 여성의 관심이 높았다. 시간제는 대세다. 시간제를 원하는 현직 교사도, 재취업을 원하는 교사 경력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시간제 교사 제도는 교과 교육만큼 중요한 학생과의 다양한 접촉을 묵과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맹점이다. 전일제를 원하는 예비 교사들의 취업문을 좁히고 교직 경험이 없는 소위 ‘장롱 교원자격증 소지자’나 소일(消日)거리를 찾는 재력 있는 고령 퇴직 교사를 임용할 우려도 있다. 교육부가 이 제도를 강행하겠다면 시간제 교사는 신규 임용을 줄이고 뽑을 게 아니라 별도로 선발하고, 교사 경력자 중에서 유능하고 헌신적이었던 사람을 엄선해야 한다. 예산이 더 들어가는 문제는 교육부의 몫이고, 선발 기준은 시도 교육감의 책무다. 두 조건을 충족시키고 내년 말 결과를 냉정히 평가해서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게 그나마 교단의 혼란과 불만을 줄이는 길이다.

이쯤에서 교직사회의 자성도 필요하다. 불리한 일이 있을 때만 교직의 특수성을 내세울 게 아니다. 교사의 전문성과 헌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감히 ‘4시간짜리 교사’를 들고 나올 수 있겠는가. 교직사회에 본받을 만한 거울이 사라진 지 오래고, 학교에 겨울이 온 지도 오래다 보니 빈틈을 찔린 것이다.

입으로만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해선 공허하다.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교직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단물만 빼먹고 궂은일은 피하려 한다면 누가 존경하며, 누가 역성을 들겠는가.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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