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기욱]과거사, 동아시아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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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지난여름 국내 한 대학에서 2주간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동북아의 과거사 문제와 영토 분쟁을 주제로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에서 온 30여 명의 대학생이 참석했다. 전쟁과 식민지 또 그에 따른 비극적인 사건들로 얼룩진 동북아의 근대사가 나라마다 어떻게 기억되고 서술되는지 또 현재의 지역질서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강 중에 ‘일본은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과 중국 학생들은 주로 “한 적이 없다”라거나 “했어도 진정성이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반면 대부분의 일본 학생은 과거사나 사과에 대한 논란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한중일 역사 교육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우선 역사에 대한 불감증(historical amnesia)이다. 불행한 과거에 대한 무시나 무관심은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게 할 뿐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한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은 역사의 교훈을 얻지 못하고 나치즘에 빠져 또다시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의 보수 세력들이 깊이 성찰해야 할 일이다.

또한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선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 일본 학생들의 역사 불감증이 우려되지만 한국과 중국의 대학생들이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사과’의 뜻을 정의하기 나름이라 해도 일본의 현직 총리를 비롯해 지도자들이 한국과 중국에 사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일본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하다. 총리가 사과를 한 후 문부상 (교육부 장관)이 총리 발언을 부정하는가 하면 총리나 각료들이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니 한국이나 중국에선 그럴 수밖에 없다. 일본은 ‘사과 피로감’을 호소하기보다는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는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역사란 단지 과거의 사건을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과거를 (재)구성함에 있어 특정 부분을 빼거나 강조하게 되고 이 점이 바로 역사 인식의 차이를 낳게 한다. 동북아 근대사만 해도 중국이 난징(南京)대학살에 초점을 둔다면 일본은 미국의 원폭을 중요하게 다룬다. 반면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강조하고 한국은 징병, 징용, 군위안부 문제 등 일제의 억압에 방점을 둔다. 더구나 역사 교육은 그 나라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정서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정치적 폭발력이 있다.

‘동북아의 패러독스’ 즉 경제, 문화, 사회적 교류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 심화되는 모순을 극복하려면 균형 있는 역사 교육이 필요하며 특정 사실을 주입하려 하기보다는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과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또한 비교적 시각에서 왜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나라마다 다르게 기억하며 왜 공통된 역사 인식이 어렵고 또 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지 여러 각도에서 검토하고 토론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역사 이해의 간극을 줄이고 균형 있는 인식을 만들어 가는 데는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한중일 젊은이들이 모여 과거사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며 토론하고 난징대학살기념관,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을 방문하면서 과거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려는 적극적인 동아시아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과거사 문제가 중-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자 “우리 세대는 이 문제를 해결할 만큼 현명하지 않으니 다음 세대에 맡기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현재의 중-일 관계는 역사 영토 문제로 더 큰 갈등을 빚고 있고 역사 교육은 갈수록 더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선 분명 지금보다 현명한 세대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편협한 민족주의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인권, 민주주의, 평화 등 보편적 가치에 기준한 유연한 역사관을 가진 시민을 육성하여야 한다. 국내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논쟁도 향후 동북아의 리더가 될 대한민국의 현명한 세대를 만들기 위한 건설적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근대사#동북아시아#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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