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우정에 대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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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데 고야, 부상당한 미장이, 1786∼1787년
프란시스코 데 고야, 부상당한 미장이, 1786∼1787년
건물 신축공사장에서 인부 한 명이 비계에서 떨어져 크게 부상했다. 함께 작업하던 인부 두 명이 사고를 당한 미장이를 급히 병원으로 옮기는 중이다.

두 남자의 눈빛에서 동료의 불행을 나의 일처럼 걱정하고 동정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18세기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이 그림의 주제는 건설현장 노동자의 인권보호이지만 숨겨진 의미는 동지애다.

고야가 사나이의 뜨거운 우정을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가족보다 더 사랑한 친구 마르틴 사파테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라고사 수도회학교 친구인 두 사람은 사파테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6년 동안이나 편지를 주고받았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오죽하면 고야가 사파테르에게 보낸 편지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고야의 전기(傳記)를 쓰는 일은 불가능했을 거라는 주장까지 나왔을까.

고야가 1794년 사파테르에게 보낸 편지는 두 남자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말해주고 있다.

‘내가 귀만 먹지 않았다면 밤 9시가 되는 이 순간 자네의 침실에 커튼을 달아주러 달려가 다음 날 돌아왔겠지. 내가 자네를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네.’

40대 중반에 중병을 앓고 청력을 잃은 귀머거리 화가에게 절친한 친구와의 편지 대화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수상록’에서 우정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우정의 효용가치를 알고 싶으면 세상에서 자기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려보라. 그러면 ‘친구는 또 한 사람의 자기 자신이다’라는 옛사람들의 말이 오히려 인색한 표현이었다고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친구는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친구를 ‘근심 걱정을 함께 나누는 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야는 그 의미를 그림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고야#부상당한 미장이#건설현장 노동자#동지애#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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