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댁의 아이도 맞고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따악∼ 따악∼.”

수영장 안에 정체 모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서 나는지 고개를 돌려 보다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다. 수영 코치가 초등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 작은 아이의 엉덩이를 오리발로 때리고 있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코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리발로 머리를 툭툭 건드려 가며 욕설 섞인 훈계를 했다. 잠시 뒤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을 물 밖으로 나오라고 해 오리발로 때린 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게 했다. 기자의 아들이 방학을 맞아 강습을 받고 있는 작은 동네 수영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경찰에 신고라도 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남의 일에 괜히 나서는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더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의 엄마도, 큰 죄라도 지은 듯 무릎을 꿇고 있는 학생의 엄마도 그곳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새파랗게 젊은 수영 코치의 폭력을 그저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몇 차례 아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와 봤던 아내가 경험 없는 기자에게 말했다.

“저 코치가 이 시간에 가르치는 아이들은 선수가 되고 싶은 학생들일 거야. 취미로 배우는 우리 애랑은 달라. 아마 엄마들부터 맞으면서 배워야 빨리 실력이 늘 거라 생각할걸?”

사실이었다. 수영장 입구에서 한 엄마가 자랑스레 떠벌리는 말을 들었다.

“○○ 엄마도 코치 바꿔 달라고 해. △ 코치가 잘 가르쳐. 우리 애도 많이 좋아졌잖아.”

△ 코치는 바로 그 코치였다.

취재를 하면서 여러 구타 현장을 목격하거나 내용을 전해 들었다. 폭력은 초등학교 운동부부터 프로팀까지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동네 수영장에서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자식이 ‘제2의 박태환’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맞으면서 자란 아이는 때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흔히 말하는 ‘폭력의 대물림’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 운동부 선수가 가혹 행위를 경험한 비율은 10명 중 9명꼴이다. 안 맞는 운동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스포츠 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는 것도 그래서다.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스포츠 지도자들의 고용 문제와 대회 성적만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체육 특기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대안도 진즉 마련돼 있다. 그래도 스포츠 폭력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이제 그 이유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이 맞는 것을 방관하는 부모가 이리 많은데 제도 좀 바꾼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