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불안을 먹고사는 출산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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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소비자경제부 기자
염희진 소비자경제부 기자
기자가 각종 출산용품과 태아보험 업체의 타깃이 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임신 12주째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3차원(3D) 입체 초음파 영상을 촬영했다. 눈, 코, 입이 막 생긴 태아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병원에서 안내를 하지 않아 필수인 줄 알았는데 다른 병원에선 선택사항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미 4만 원을 지불한 뒤였다.

몇 주 뒤 병원은 장기(臟器)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정밀 초음파 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장기 기형 여부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별도 비용만 7만∼8만 원. 병원 측은 이번에도 선택사항이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돈 주고도 누릴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 걸 공연히 트집 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기의 이상 유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면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출산한 친구는 병원이 초음파 촬영 횟수를 제한한다며 한국 임신부를 부러워했다.

문제는 이 영상이 촬영과 동시에 한 초음파 영상 업체로 넘어가면서 시작된다. 병원에서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폰과 PC로 보려면 업체의 웹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아기 얼굴을 보기 위해 개인정보를 노출한 대가였을까. 언제부터인가 e메일과 문자메시지로 각종 육아업체의 홍보물이 배달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부와 병원의 요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유산과 조산 등 임신부의 불안요소는 늘고 있고, 태아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은 임신부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병원은 진보한 초음파 촬영기술 덕분에 오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더 정확한 영상을 원하는 이는 임신부라고 병원 측은 얘기한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발달해 어느 병원에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다고 소문이 나면 다른 병원도 경쟁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양쪽의 불안을 잠재워주는 영상업체들이 신종 사업으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상품 중에는 태아 심음측정기가 있다. 유산을 불안해하는 임신부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태아의 심장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기가 우는 이유를 몰라 걱정하는 엄마를 위한 아기 울음소리 번역기도 판매되고 있다. 업체 측은 단순한 육아용품이 아닌 아기의 위급상황을 알려주는 ‘지능형 위급상황 알림장치’라고 설명한다.

최근 육아시장에서 외제 고가 유모차로 자신을 과시하는 소비경향이 한물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격보다 브랜드를 선택의 우선순위에 놓던 브랜드 지상주의도 옛말이 되고 있다. 그 대신 실용과 안전을 어떤 기준보다 중시하는 소비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언론이나 블로거, 동료 엄마의 말 한마디에 의존하는 경향 또한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상품을 구입하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진짜 아기의 안전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불안해서인지….

염희진 소비자경제부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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