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장택동]강자의 덕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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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국제부 기자
장택동 국제부 기자
13년 전 발생한 팔레스타인 소년 사망사건의 진위를 놓고 새삼 논란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19일 ‘프랑스 방송 프랑스2가 보도했던 팔레스타인 소년 무함마드 알두라 사망사건은 증거가 없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사건은 제2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무장봉기)가 막 시작되던 2000년 9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자지구의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프랑스2가 촬영한 영상을 보면 두라(당시 12세)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드럼통 뒤에 쪼그려 앉은 아버지 등 뒤에 숨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고 있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린 뒤 두라는 아버지의 무릎 위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다. 프랑스2는 두라가 이스라엘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여론은 크게 악화됐다. 이 사건 이후 인티파다의 불길이 거세지면서 두라는 인티파다의 아이콘이 됐다.

이후 일부 이스라엘 정부 인사와 언론은 “팔레스타인 측이 두라가 죽은 것처럼 속여 선전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해왔고, 이번에 정부 차원의 종합보고서를 낸 것이다. 두라가 피를 흘리거나 총격을 당한 모습이 영상에 뚜렷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근거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 사건을 들고 나온 것은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악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유엔이 팔레스타인에 옵서버 국가 지위를 부여했고, 이달부터 구글이 팔레스타인을 국가 이름으로 인정하는 등 팔레스타인에 대한 우호적 시선이 늘어가는 상황을 우려한 것 같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이스라엘에 차갑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스라엘만 이 영상이 가짜라고 주장한다”고 꼬집었고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도 “이번 보고서로 인티파다 당시 많은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군에게 사살됐다는 사실만 다시 부각됐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군사력으로나 정치·경제적 영향력으로나 팔레스타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 강자(强者)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강경 일변도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 예로 이스라엘 정부는 8일 팔레스타인 주거지역인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296채를 짓는 계획을 예비 승인했다. 정착촌 건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핵심 쟁점으로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도 이스라엘에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피와 땀으로 건설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이스라엘의 의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인심을 잃는다. 약자를 억누르기보다는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강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장택동 국제부 기자 will71@donga.com
#이스라엘#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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