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남양유업의 통화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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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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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나 국방부 고위 당국자들이 언론을 상대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브리핑하는 경우가 있다. 국무부에선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펜타곤에선 마이클 시퍼 전 동아시아담당 부차관보가 나선다. 대상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 출신 워싱턴특파원들. 이때 기자들은 카메라와 녹음기를 휴대할 수 없다. ‘백그라운드 브리핑(배경 설명)’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어기고 보도할 경우 해당 언론사는 다음 브리핑에 초청받지 못한다.

▷애플사 스마트폰인 ‘아이폰’에는 상대방과 전화할 때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인터뷰나 연설, 강연은 녹음할 수 있지만 통화 녹음은 안 된다. 미국에서 팔리는 삼성 갤럭시폰도 마찬가지다. 통화 중에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도, 스마트폰에 통화 중 녹음기능을 탑재하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는 통화 중 녹음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팔리는 아이폰에도 통화 중 녹음 기능은 없다.

▷제3자가 다른 사람의 대화나 전화통화 내용을 불법 도청했을 경우엔 검찰에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 불법 취득한 정보로는 수사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원칙에 따른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도청팀인 ‘미림(美林)팀’이 정계와 재계 관계 언론계 등의 유력인사를 불법 도청한 테이프 300여 개가 있었지만 검찰은 공개하지 않고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버렸다. ‘삼성 X파일’ 역시 같은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 점주에게 폭언과 심한 욕설을 하면서 물량을 떠넘기는 전화통화 내용이 공개돼 파문을 몰고 왔다. 본사의 과도한 물량 밀어내기와 갑(甲)의 횡포에 분노한 대리점주들이 인터넷에 통화 파일을 올리면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혼소송 등 민사소송에선 일부러 상대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 내용을 녹음해 증거로 제출하는 사례도 많다. 갑즉시을 을즉시갑(甲卽是乙 乙卽是甲).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세상이라 갑이든 을이든 말조심할 때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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