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미 원자력협정, 한국 족쇄 풀어줄 때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0일 03시 00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사실상 결렬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재처리)과 우라늄 농축 권리 확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핵 확산 방지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미국은 ‘절대 불가’ 쪽에 가깝다. 결국 미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74년 체결한 원자력협정은 40여 년간 우리 원자력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평화적 핵 이용권을 제한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핵연료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위한 농축과 재활용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23기의 원전을 가동하는 세계 5위의 원전강국인 한국이 매년 9000억 원을 들여 농축 우라늄을 외국에서 사오는 상황은 이제 개선할 때가 됐다는 주장에는 미국도 공감한다. 다만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적용에서 한국에만 예외를 인정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베트남 등의 요구도 들어줘야 한다며 난색을 표한다.

북한 핵개발에 대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주도하는 처지에서 한국만 특별대우 할 수 없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하지만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모범국인 한국을 북한과 같이 취급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 일본에도 1988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는가.

2010년 이후 6차례 본 협상을 벌였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양국 협상대표는 일단 현 협정을 2년 정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원자력협정 파기(破棄)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하는 만큼 일단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는 다음 달 7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하다. 언젠간 해야 할 숙제를 미루기보다 양국이 윈윈하는 해결책을 고민하는 게 낫다. 2년 후에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10년 내에 사용후핵연료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가 된다. 미국 역시 한국 원자력업계와 컨소시엄 형태로 세계의 원전 수출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배를 탄 측면이 있다.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는 박근혜정부와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새롭게 발전시킬 한미동맹의 시금석이다. 한반도 방위 문제를 넘어 글로벌 파트너인 한미동맹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평화적 핵 이용권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사용후핵연료 재활용#우라늄 농축 권리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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