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초단체장 무공천 실험, 새 정치 위해 한번 해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1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인 작년 11월 “정당 개혁의 핵심은 공천 개혁”이라며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 공천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도 같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4·24 재·보선이 다가오면서 여야는 주판알을 굴리며 딴소리를 하고 있다. 이번에 재·보선을 치르는 기초단체장은 경기 가평군수와 경남 함양군수의 두 곳, 기초의원은 서울 서대문 마, 경기 고양시 마, 경남 양산시 다의 세 곳이다.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은 그제 “대선 때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공천하지 않기로 했다”며 민주당에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 전에는 계속 공천을 하는 것이 정당의 의무”라며 거부했다. 그러자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새누리당만 공천하지 않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구청장 군수 등에 대한 정당 공천을 없애면 참신한 지역 정치인 대신에 지방 토호들이 주로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또 출마자들이 난립해 유권자들이 누가 누군지 판단하기 힘들 수 있고, 작은 곳일 경우 지지 후보를 놓고 ‘지역 편 가르기’가 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 중에는 자신이 속한 지역의 공천권을 포기하게 되면 출마 희망자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이 두려워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현 체제에선 자치단체장은 지역 주민보다 중앙당과 지역 국회의원의 눈치를 더 본다. 정당공천제의 대표적인 폐해다.

여야가 대선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면 국민의 불신과 냉소는 더 커진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혁신 경쟁에서 새누리당에 뒤지면 안 된다”며 공천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여야가 정당 공천을 배제하는 ‘무공천 실험’에 합의했으면 한다. 공천권 포기는 여야 어느 한쪽만 해서는 효과가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뜻을 모아 공천 없는 선거를 한번 치러보고, 문제점을 보완해 공직자 선거법을 개정한다면 새 정치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정당 공천 폐지#기초자치단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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