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정]건축박물관을 세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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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정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이상정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우리나라는 위대한 기록문화 전통을 가진 나라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보듯 치밀한 기록물 자체가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 국가 단위의 건축 공사가 시행될 때 모든 과정을 기록했으며, 공사가 끝나면 책으로 편집해 한 부는 왕에게 헌납하고 나머지 두세 부는 사고(史庫)에 보관했다. 이를 영건의궤(營建儀軌)라 한다. 영건의궤는 건축 공사 예산, 집행 명세, 일정, 자재 수급, 공사 내용, 장인 이름까지 공사 과정의 모든 내용이 기록되었으며, 다음 건축 공사를 진행하는 데 참고가 되는 귀중한 실증적인 자료를 담고 있다.

근대 이후 우리 건축 기록문화는 상당히 축소됐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자료는 여전히 상당 부분이 정리되지 못한 채 보존소에 들어 있다. 또 정부 수립 이후 건축도시 관련 기록물들의 관리 수준은 양과 질 모두 부족한 편이다. 공공에서 생산한 기록물마저 실태 파악 및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해당 지자체에서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고 멸실되기도 하였다. 민간의 경우는 대형 업체를 제외하고 체계적인 기록물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007년 건축 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건축기본법 시행령에서 건축정책기본계획의 내용에 건축물 및 공간 환경에 관한 기록 자료의 구축에 대한 당위성과 재정 지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정부기관은 각종 건물 및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 인허가 사항을 서류로 보존하고 있으며, 공공건축물의 건설 및 유지 관리의 각 과정을 기록한 도서를 갖고 있다. 민간업체 특히 건축사사무소는 단순히 계획에 그쳤거나 실제로 수행한 여러 프로젝트에 관한 도서, 모형, 사진 등을 보관하고 있다.

건축박물관은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종합 기관으로 정부와 민간업체의 건축 관련 자료들을 선별적으로 축적, 관리할 수 있다. 이 자료들을 축적해 실증적인 연구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에 정책 수립자는 이 자료를 통해 건축과 도시의 전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를 예견하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세우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건축박물관은 국민과 외국인에게 건축문화와 해당 도시를 홍보하고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984년에 개관한 독일건축박물관은 도서관, 박물관, 아카이브의 세 기능이 합쳐져 기록물의 수집, 보존, 전시, 교육, 연구에 관한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며, 1986년 설립된 프랑스 20세기 건축기록물보존소, 1988년 설립된 네덜란드 건축기관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2011 UIA 도쿄 총회’ 때 특별 전시된 메타폴리즘 미래도시전 ‘전후의 일본, 다시금 되돌아보는 부흥의 꿈과 비전’도 같은 범주에 드는 전시로 세계 각국에서 참석한 건축가들로부터 부러움과 찬사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경제 강국이다. 이제 국가 건축 정책은 건축물의 양적 개발에서 건축문화의 질적 고양으로 전환해야 하며, 건설 위주 건축 정책에서 역사와 경험을 존중하는 문화 중심 건축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므로 건축박물관 건립은 국토 환경의 품격을 높이고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향상시키며 우리의 건축문화를 진흥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이상정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건축박물관#영건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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