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감으로 잡는 정부 조직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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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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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감은 분쟁의 과일이다. 집 안에 심는 몇 안 되는 과일나무 중 하나인 감나무는 가지를 뻗어 크게 자라고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래서 담을 넘어 이웃의 마당 위에 달려 있거나 마당에 떨어진 감은 누구의 것이냐 하는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대표적인 분쟁으로 조선 중기에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과 도원수 권율 장군의 일화를 들 수 있다. 이항복 집의 감나무 가지가 담을 넘어오자 권율의 집에서 그 감들을 따먹었다. 화가 난 소년 이항복은 권율의 방 창호 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 “이 주먹이 누구 주먹이요?”라고 물은 뒤 “네 주먹이지. 누구 주먹이겠느냐”라는 답을 받자, 감을 가로챈 일을 따져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아냈다. 이 인연으로 이항복은 권율의 사위가 된다.

감은 가지에 달려 익으면서 떫은맛이 사라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단감과 떫은 감으로 나뉜다. 단감은 껍질이 두껍고 속이 단단하며 단맛이 일찍 나타나지만, 떫은 감은 홍시(연시)나 곶감으로 만들기 전에는 떫어서 먹지 못한다. 문제는 이 떫은 정도에 따라 주관 부처가 다르다는 것이다. 식물분류학적으로 학명(Diospyros kaki)이 같은 감나무지만, 행정적으로는 주관 부처가 다르다.

단감은 농진청, 떫은 감은 산림청에서 담당한다. 단감이 논밭 주변에서 자라고 떫은 감이 산에서 열리기 때문이 아니다. 고욤나무에 접붙여서 키우는 떫은 감은 재래종으로 오랜 역사를 같이했지만, 단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유실수로 들여온 품종이 많다. 그래서 같은 감나무지만 단감은 ‘돈이 되는’ 과일의 영역(농진청)에서 농산물이고, 떫은 감은 보통 나무의 영역(산림청)에서 임산물이 된다. 같은 나무라도 열매가 단맛이 있느냐, 곧 돈이 되느냐를 놓고 주관 부처가 달라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18대 정부 조직 개편안을 놓고 이 같은 ‘감나무 분쟁’이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산업·보건·농림·국토·해양·건설·환경·교육·문화·국방·외교 등 거의 모든 부처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미래창조과학부의 중추가 될 과학기술 행정은 기초연구·대학지원·인력양성·산학협력·원자력·방송통신 같은 영역을 놓고 내 것 네 것을 따지는 ‘감나무 분쟁’이 절정에 이르렀다. ‘담’(행정조직)을 자주 허물고 새로 세우다 보니 경계에 있는 ‘감나무’를 서로 차지하려는 속셈 때문이다.

분쟁의 대상이 되는 ‘감나무’는 ‘단감’을 생산하는, ‘단맛’이 많이 나는 행정이다. 예산의 규모가 크고 인사의 범위가 넓어 ‘당도’(이권)가 굉장히 높다. 밥그릇이 크고 그 개수도 많다는 뜻이다. 아무리 행정 효율을 내세우고 진흥과 규제, 선수와 심판을 따져도 그 내막을 알고 보면 ‘단감’을 놓고 다투는 ‘감나무 분쟁’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의 조직 개편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에 비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국과위의 행정은 ‘떫은 감’이기 때문일까?

맛없는 떫은 감은 분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한겨울에 배고픈 까치를 위해 남겨두는 감은 대개 떫은 감이다. 단감이라면 까치밥으로 남아 있을까? 까치밥은 어차피 떫은 데다 굳이 딸 필요가 없는 귀찮은 영역의 감일지도 모른다. 까치의 몫까지 배려하는 고운 심성을 가진 백성들이 왜 담을 넘은 감을 두고 이웃과 다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새 정부 출범을 열흘 앞두고 국회와 행정부처는 ‘단맛’을 챙기느라 아직도 정부 조직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단맛’의 내용, 곧 현직과 퇴직 공무원이 차지할 수 있는 ‘밥그릇’의 크기와 개수를 솔직하게 까놓고 협상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를 것이다. 공무원 조직의 숨은 이권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낙하산’이니 특혜니 하는 논란도 줄어들 것이다. 왜, 떫은가?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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