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마음이 아픈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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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사교육 1번지’로 불린다. 대략 500∼600개의 학원이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게 아마도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일 것이다. 일일이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대치동 5층짜리 건물에 들어서면 대체로 1층 은행 일반상가, 2∼4층 학원, 5층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학습클리닉 한의원이다. 아이들은 4층 이하 학원에서 공부하다가 ‘학원 약발’이 떨어지면 5층에서 치료를 받는다.

공부하라며 약 먹이는 나라

학원과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가 대치동에 많다는 것은 우연은 아니고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다. 교육열이 높은 만큼 자녀의 정신건강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진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많이 처방되는 약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건강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ADHD 치료제인 메칠페니데이트(성분명) 청구금액은 214억 원을 넘는다. 2008년 150억 원에서 매년 늘고 있다. 이 약은 ADHD와 경증우울증 치료제이지만 집중력을 높여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이유로 남용되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물론 대치동 아이들만 아픈 게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초중고생 648만 명에 대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했다. 다섯 명에 한 명꼴로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피해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학교폭력, 게임중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교실 분위기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아이들이 아픈 가장 큰 이유는 학업과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다. 경쟁 없는 학교, 경쟁 없는 사회는 없기에 아이들을 경쟁 무풍지대에서 키울 수는 없지만 우리 교육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그러나 심리학계의 세계 3대 석학으로 불리는 스탠퍼드대 청소년센터장 윌리엄 데이먼 교수는 “학업과 경쟁에 대한 부담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아이들의 영혼까지 파괴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경쟁 자체보다는 목적의식의 부재가 진짜 위험하다는 진단이다.

아이들을 스케줄에 맞춰 바삐 돌리게 되면 ‘시험만점’ ‘반에서 1등’ 등 단기 목표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원대한 꿈을 꾸라 하며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목적의식이 있더라도 비현실적이거나 부모 기대와 동떨어진 경우에도 아이들은 좌절한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의사가 되라고 한다면 아이의 정신은 병들기 시작한다.

학업 스트레스가 전부는 아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구본용 원장은 “관계가 학업스트레스 못지않게 정신적 상처를 주고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기는 일생에서 또래 압력이 가장 센 시기다. 많은 아이들이 또래로부터 따돌림을 당할까 봐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산다. 부모의 등골을 부러뜨린대서 ‘등골 브레이커’로 불리는 유명 브랜드 패딩에 대한 강박증을 보라. 아이들에게 이 옷은 그냥 옷이 아니라, 이 옷을 입는 무리에 들어가는 ‘신분증’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이런 정신적 아픔에 대해 어른들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폭력, 가출, 등교 거부 등 크게 사고를 친 뒤 개탄하는 것은 늦다.

청소년 아픈 마음은 미래 위협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에서 만물은 시련과 아픔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노래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피어나지도 못하고 시드는 꽃들이 너무 많다. 매년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등지는 청소년이 6만∼7만 명이고 학교 밖 청소년이 30만 명이나 된다. 조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어도 이들의 마음도 상처투성이일 것이다. 청소년의 아픈 마음이야말로 우리 미래를 위협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학업 스트레스#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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