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염재호]박근혜 정부 조직개편의 씨줄과 날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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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염재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25일 출범할 박근혜 정부의 색깔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중성이 있다. 질서와 안정이라는 보수적 가치가 있는가 하면 경제민주화와 같은 진보적 이념도 있다. 경제성장이라는 전통적 정책에 회귀하는 경향도 있으면서 반값 등록금과 생애맞춤형 복지와 같은 진보적 정책도 주장한다. 국가의 권위와 힘을 강조하지만 포퓰리즘적 정책 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묘하게 얽혀있는 씨줄과 날줄은 정부조직 개편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도 미래와 전통의 상이한 벡터가 공존하고 있다. 21세기 미래지향적인 가치가 반영된 부처의 신설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성공모델로 회귀하는 듯한 부처의 개편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과 식품의약품안전처로의 격상 및 해양수산부의 부활은 미래지향적인 정부조직 개편이다. 하지만 경제부총리제 부활과 산업통상자원부의 확대, 국토교통부의 개편 등은 전통적 경제성장 위주의 조직 개편이다.

우선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박근혜 정부가 고민하는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테스트 베드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과 같은 미래사회의 핵심적 성장 요인을 정부조직의 선두에 놓고 미래를 기획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 따라서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을 단순히 이전의 과학기술부나 정보통신부의 부활로 봐서는 안 된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도 과기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면서 과학기술을 통해 우리 사회를 새롭게 기획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과기부가 새로운 미래지향적 기능을 창출해 내기보다는 단순히 연구개발 사업비를 통합하여 배분하는 기관에 머물렀기에 실패로 그친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재구성하는 추진체가 되어야 한다. 마치 과거에 경제기획원이 경제성장을 위해 수출주도형 산업 정책과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통해 경제구조를 편성해 나갔던 것처럼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21세기 한국형 미래사회를 구축하는 종합적 기획이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개편이 보건복지부 외청(外廳)이었던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총리실 직속의 식품의약품안전처로 격상한 것이다. 이미 박 당선인은 우리 사회에서 척결되어야 할 4대악에서 불량식품을 우선적으로 지목할 정도로 국민들의 마음을 빠르게 읽었다. 채널A의 먹거리 X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연일 화제가 되고 심지어 개그맨이 진행자를 패러디하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아졌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식의약품 안전이 민생안전에 핵심적 요소로 인식된 것이다. 영국의 정치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21세기는 이념의 정치시대에서 민생의 정치시대로 변화하는 시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 국민들은 이념보다는 100세 시대를 맞아서 평생 건강하게 살다가 존엄을 갖추고 세상을 떠나는 행복한 사회를 더 원한다. 지금까지는 식품이나 의약품을 하나의 산업으로 보고 이를 육성하는 공급자 중심의 행정만 펼쳤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이를 위한 일관된 행정체제를 만드는 것이 선진화의 길이다. 이러한 규제의 강화가 오히려 새로운 산업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환경부의 규제 강화가 궁극적으로는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낸 것처럼 식의약품에 대한 강한 규제가 미래시장에서 경쟁력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기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통적 부처의 강화라는 또 다른 시도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경제부총리제 신설로 경제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것은 행정 효율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할 수 있다. 산업과 통상을 결합시킨 것도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매우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개방형 시장 구조로 바뀌고 시장의 자율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므로 지나친 경제 기획이나 조정이 시장의 활성화를 억제하게 될 가능성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예로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때 외교통상부와 같은 중립적 조정자가 사라지고 농림축산부와 산업통상자원부와 같이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부처 간 갈등이 심화되면 국내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클 수 있다.

21세기의 사회 시스템과 시장 변화는 매우 빠르다. 정부 역할도 이에 대응하여 빠르게 변해야 한다. 기존의 정부조직 개편이 단순히 정부조직의 비대화를 막는 효율성의 측면에서 부처의 통폐합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면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미래지향적 개편의 요소를 담고 있다. 이러한 개편 작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회 입법 과정에서 관련 부처들의 이기주의 로비를 차단해야 한다. 다음으로 새로운 부처에서 기존 행정 관료들의 안일한 대응이나 현상 유지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신설 부처 장관이 새로운 조직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갖고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래사회가 빨리 변하고 복잡해질수록 행정 시스템의 끊임없는 개혁만이 국정운영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이다. 모순적인 것 같은 씨줄과 날줄의 박근혜 정부 조직 개편이 복잡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hyeom@korea.ac.kr
#박근혜#조직개편#미래창조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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