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내 집 앞 눈 치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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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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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스라엘의 한 탁아소에 상당수 부모들이 정해진 시간인 오후 6시를 넘겨 자녀를 데리러 왔다. 같은 일이 반복되자 탁아소 측은 부모가 지각할 때마다 10분 단위로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오히려 늦게 자녀를 찾으러 오는 부모들이 더 늘어났다. 보육교사에게 미안해서라도 제 시간에 오려던 부모들이 벌금을 내면서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행동했다. 깜짝 놀란 탁아소는 벌금제도를 없앴다. 그러나 부모들의 지각은 줄어들지 않았다. 교사에 대한 미안함,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상식 등 내적 규범이 벌금제도로 인해 사라져버린 것이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인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교수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에는 ‘사회규범’과 ‘시장규칙’ 두 가지가 있는데 사회규범보다는 시장규칙의 번식력이 더 크다”고 말한다. 사회규범이 작동되던 분야도 한번 시장원리에 노출되고 나면 힘을 잃고 만다는 설명이다. 시장원리는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가장 훌륭한 시스템의 하나다. 그러나 룰이 공정할 때만 그렇다. 잘못 적용된 시장원리는 목표 달성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잘 작동하던 사회규범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어제는 입춘대설(立春大雪)이었다. 올해 들어 최대의 폭설이 내렸다. 산과 강에 내린 눈은 아름다운 경치를 꾸미지만 도시에 내린 눈은 생활 불편을 준다. 전국 도로가 얼어붙어 빙판길이 되거나 진흙탕이 되었다. 차량의 고립, 미끄러짐 사고가 잇따랐다. 빙판길 낙상 사고를 당한 환자들로 병원 응급실이 붐볐다. 주요 간선도로의 제설은 지방자치단체 책임이라고 쳐도 자기 집 앞 눈도 안 치운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깨끗하게 눈이 치워진 곳을 보면 손님을 맞아야 하는 점포나 건물관리인이 있는 빌딩인 경우다. 눈 치우기에 시장원리만 작동하고 사회규범은 실종됐다.

▷미국은 눈 치우기의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는 나라다. 내 집 앞 눈 치우기는 잔디 깎기나 낙엽 치우기처럼 주민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인식되고 있다. 노인들은 이웃집 청소년을 고용해서라도 반드시 눈을 치운다. 자기 집 앞 눈 치우기가 끝나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공용주차장으로 몰려가 눈을 치운다. 돈보다 무서운 사회규범의 힘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행인이 눈길에 넘어지면 길과 마주하고 있는 집주인에게 소송을 걸기 때문에 눈을 치우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보다는 오랜 관습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최근 한국에서는 눈 치우기를 강제하는 조례 제정에서 한 걸음 나아가, 눈을 안 치운 집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과태료가 탁아소 벌금처럼 눈을 안 치운 집에 면죄부를 줄까 걱정된다. 눈 치우기야말로 마이클 샌델 교수가 말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아닐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시장규칙#상식#내적 규범#사회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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