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세 아이의 세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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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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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벙어리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몹시 아끼던 장갑을 잃은 아이는 안내데스크로 가서 혹시 장갑을 주운 사람이 있는지 안내방송을 부탁했다. 그러나 방송을 하려는 순간, 아이는 퍼뜩 생각했다. ‘서점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겠구나.’

그래서 방송은 하지 말고, 혹시 누군가가 주워서 갖고 오면 연락 달라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왔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엄마, 찾을 수 있겠지?” 엄마는 “누가 털장갑 한 짝을 찾아 주겠냐”고 말했고 아이는 다시 “엄마, 나 같으면 찾아 줄 것 같은데…, 나 같은 사람이 없을까” 하고 반문했다. 다행히 그 아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찾았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누군가가 별 생각 없이 중학교 2학년 조카에게 “너의 꿈이 뭐니”라고 물었는데 기상천외한 대답을 들었다면서 맞혀보라고 했다. 설마 의사, 교사, 디자이너, 아니면 연예인? 상식적인 거라면 묻지도 않을 테니 더 궁금했다.

“뭐래요?”

“정규직요.”

그 사람 역시 너무 황당해서 조카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너 정규직이 뭔지나 알아?”

“알아요. 안 잘리는 거잖아요. 우리 반에 나 같은 애들 또 있어요.”

쓴웃음을 짓는 나에게 또 다른 사람이 일곱 살배기 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생일 초대를 받아 친구네 집에 간 조카아이가 평수가 넓은 아파트를 보며 “와, 너네 집 되게 넓다”고 감탄하자 생일을 맞은 아이는 “우리 집, 대출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도 끼어들어 “우리 집도 대출이야”라고 했단다.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모였던 엄마들이 일순 할 말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첫 번째 아이는 캐나다에서 몇 년 동안 살다가 귀국한 열 살 아이다. 좋아하던 장갑을 잃어버리고 엉엉 울 정도로 서운했지만 감정을 자제할 줄 알았다. 두 번째 아이는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학생이고, 샌드위치를 두 개씩 만들어서 먹는 실습시간에, 그중 하나를 선생님께 먼저 갖다 드려 감동시킨 착한 아이라고 했다. 세 번째 아이는 서울의 중산층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꼬맹이다.

한 달 사이에 들은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교육’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세 아이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운 보통 아이들이다. 다만 한 아이는 캐나다에서 어려서부터 시민의식이 몸에 밴 것이고, 다른 아이는 뉴스에서 정규직을 달라는 절박한 투쟁을 자주 보았을 것이고, 부모로부터 대출 이야기를 무심코 들었던 것뿐이다. 사회와 부모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이 다를 뿐이다.

겨울방학인 요즈음, 열심히 공부하라고 아이를 닦달하는 부모들은 자신이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먼저 돌아볼 일이다. 아이들은 가르친 대로 배우는 게 아니라 본 대로 배운다. 과연, 내 아이가 나를 똑같이 빼닮는다면? 지금 어른들이 하고 있는 행동을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다.

윤세영 수필가
#서점#안내방송#벙어리장갑#정규직#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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