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태원]국가안보실 부활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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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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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논설위원
하태원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새 정부에서 국가안보실(가칭)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는 모양이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식 출범 전이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외교안보 참모진은 대선 공약대로 국가안보실 설립을 위한 밑그림 그리기에 착수했다. 외교, 안보, 통일정책 수립과 전시·준전시 상황 등 국가위기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기능이 취약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굴기(굴起)로 대표되는 동북아 새판 짜기와 안보 불안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박근혜 정부가 응전(應戰)의 결의로 선택한 첫 카드다.

박 당선인의 국가안보실 부활 선언은 이명박(MB) 정부가 구축한 기존 시스템의 부정으로 들린다.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거중조정과 중장기 전략 수립, 위기 대응이라는 세 가지 핵심영역이 모두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처럼 군 최고통수권자가 사건 발생 후 1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보고를 받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10분 안에 판문점 이북에 집중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 수천 발이 서울의 하늘에 쏟아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한 캠프 인사는 “MB 정부 들어 외교안보 시스템이 더 나빠졌다는 것은 99%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현 정부 인사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독점했다는 말을 듣던 노무현 정부 시절의 NSC 사무처를 공중분해해 위기대응 기능을 소방방재본부, 행정안전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으로 분산시킨 것이 총괄조정 기능 수행 마비로 귀결됐다는 판단이다. 차관급으로 외교안보통일 문제를 사실상 주도했던 이종석 NSC 사무차장의 선례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MB 정권이었지만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모든 길이 김태효로 통했다’는 야권의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박 당선인 측의 국가안보실 구상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NSC 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1947년 해리 트루먼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법에 따라 설치된 미 NSC는 당초 안보 관련 정책 대통령 자문기구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외교안보 현안과 관련한 범정부 간 정책조정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안정된 시스템의 구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가안보실 수장(首長)의 위상과 역할이다. 국제정세와 남북관계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부처 간 상충되는 의견 조정을 통해 협력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조율해 낼 수 있는 인물이 국가안보실장이 되어야 한다.

명성에 비해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의 헨리 키신저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옛 소련과의 군축(軍縮), 중국과의 수교, 베트남전쟁 종전 협상 등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월권을 했다는 지적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보좌한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이라크 침공이라는 그릇된 판단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대통령을 충직하게 보좌하는 것이 안보보좌관의 1차 임무지만 대통령이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직언(直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훌륭한 안보보좌관으로 기억하는 인물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다. ‘선의의 조정자(honest broker)’ 역할을 자임하며 대통령의 철학과 비전을 각 부처의 전문성에 유기적으로 결합시켰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두 차례(제럴드 포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그는 정당과 이념을 초월해 민주, 공화 양 진영 외교안보 담당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멘토’로 자리매김했다.

새 정부 국가안보실에 오랜 ‘오리엔테이션’ 기간이 주어질 것 같지 않다. 원자력협정 개정,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한미 동맹 현안이 산적해 있고 3차 핵실험 준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북한도 예고 없이 도발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까지 55일 남았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국가 안보#브렌트 스코크로프트#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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