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경제민주화’는 反기업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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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이기적일까, 이타(利他)적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실험 경제학자들은 ‘독재자 게임’을 고안했다. 2인 1조 실험에서 한 명이 ‘독재자(dictator)’가 되어 공짜로 받은 20달러 전액을 챙기거나 아니면 상대에게 일정 금액을 나눠주는 게임이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독재자’들의 70%가 평균 5달러를 상대에게 나눠준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의 본성은 이타적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의 존 리스트 교수는 이 실험 결과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기존 게임에 독재자가 상대에게 한 푼도 나눠 주지 않고 심지어 1달러를 갈취할 수도 있다는 옵션을 추가했다. 만약 독재자가 이타적이라면 이 옵션은 기존 실험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 상대에게 돈을 나눠주는 ‘자비로운 독재자’의 비율이 기존의 절반인 35%로 줄어들었다. 심지어 독재자의 20%는 상대의 1달러를 갈취하기까지 했다.

리스트 교수는 게임 룰의 작은 변화에도 크게 달라지는 실험 결과에 대해 “보통 사람들의 본성은 선하거나 악하기보다는 그저 인센티브(誘引·유인)에 반응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경제적 인센티브뿐만 아니라 도덕적 사회적 인센티브에도 반응한다. 리스트 교수는 독재자 게임에서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독재자가 많았던 이유가 푼돈 때문에 자신들이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으로 비치는 게 싫어서였을 거라고 분석한다.

反재벌과 反기업은 다르다

하지만 도덕적 사회적 인센티브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강렬함을 당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도덕적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라는 교묘한 편법으로 사익(私益)을 추구해온 것이 좋은 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작년 6월 조사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부자(父子)는 이 편법으로 3조6000여억 원을 벌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조 원 이상의 수익을 챙겼다. 삼성SDS가 상장될 경우 이건희 회장 자녀들 역시 수조 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거라고 한다.

재벌들의 이런 행동은 그들이 특별히 부도덕해서라기보다는 공정거래법과 같은 기존의 법 제도가 부실해 그들에게 그런 경제적 인센티브를 줬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등장한 법 제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박근혜 대선후보에게 건의한 ‘경제민주화 공약’이다.

박 후보는 16일 김 위원장이 건의한 내용 중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중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도입 등 세 가지를 뺀 35개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놓았다. ‘산업조직론’ 관점으로 평가하자면, 박 후보는 김 위원장이 제시한 재벌의 ‘구조’ 개혁보다는 공정한 시장 ‘행위’를 유도해 재벌의 경영 ‘성과’를 다스리는 데 중점을 뒀다.

박 후보는 재벌 구조 개혁이 반(反)기업적으로 작용해 성장을 저해할까 염려해 세 가지를 뺐다고 한다. 그의 염려는 타당한가. 먼저, 대규모기업집단법의 경우 반(反)재벌적인 건 분명하지만 반기업적 인센티브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은 거의 없다.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이 다르듯이 반재벌과 반기업은 다를 수 있다. 박 후보는 이 법이 “세계적으로 선례가 없고, 현행법과 충돌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벌 문제 자체가 한국적 현상이므로 우리가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충돌하는 현행법을 개정해 재벌에게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둘째, 박 후보는 재벌의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을 제한하면 외국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에 노출될 거라고 염려한다. 그러나 할리우드 영화의 위협이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높였듯이 어느 정도의 적대적 M&A 위협은 오히려 재벌 기업의 체질 개선에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의결권 제한을 순차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재벌에게 대비할 시간을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끝으로, 박 후보는 재벌의 경제 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염려한다. 그러나 그간 재벌은 헌법상 평등권에 위배되는 특권을 누려왔다. 이를 시정하려면 국민참여재판이 됐든, 다른 어떤 형태가 됐든 법 제도를 개편해 재벌의 인센티브를 바꿔줄 필요는 분명히 있다.

잘못된 재벌 인센티브 바로잡아야

리스트 교수의 설명대로 우리 모두는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재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좋은 법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인센티브를 바로잡으려는 개혁에는 늘 두려움이 앞선다. 황금알을 낳는 재벌을 다룰 때는 더욱 그렇다. 이때 기억해야 할 말이 바로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명언이다.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igkim@hallym.ac.kr
#경제민주화#기업#경제적 인센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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