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정훈]‘딱한 아들’ 이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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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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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사회부 차장
박정훈 사회부 차장
이시형. 이명박 대통령 부부에겐 가슴 떨리는 이름이다. 시형 씨(34)를 낳기 전 부부는 딸만 셋 뒀다. 이 대통령이 37세 되던 해 고대하던 아들을 얻었다. 시형 씨는 누나들만큼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를 1년 남짓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셋째 매형(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회사에서 1년간 일하다 2010년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다스에 입사해 경영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이 대통령 부부는 늘 아들이 걱정이었다. 큰사위는 재벌회사 변호사, 둘째 사위는 서울대병원 의사, 셋째 사위는 재벌 3세인데 아들은 크게 내세울 게 없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한 여성단체 신년하례회에서 ‘우리 집도 딸들이 낫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대선 약속을 지키느라 331억 원 상당의 빌딩 세 채를 기부하는 바람에 시형 씨는 물려받을 재산도 거의 없다. 시절 좋을 때 출가한 누나들과 달리 좋은 혼처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대통령 부부에게서 “시형이 중매 좀 서라”는 말을 들었다는 지인도 적지 않다.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은 그에게 내곡동 사저 특검은 파도 뒤에 닥친 해일이었다. 사실 편법증여의 책임이 시형 씨에게 있다고 보긴 어렵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한 게 죄다. 시형 씨는 당초 검찰에 제출한 서면 진술에선 ‘아버지가 재매입할 테니 내 명의로 먼저 취득하라고 해 그대로 했다’고 밝혔다. 명의만 빌려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특검에 출석해선 “내가 실제 살려고 했다. 아버지와 상의 없이 큰아버지(이상은 다스 회장)에게 6억 원을 빌렸다”고 말을 바꿨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것을 우려해 진술을 번복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해 5월 24일 시형 씨에게 현금을 직접 건넸다는 큰어머니 박청자 씨는 압수수색 나온 특검팀 수사관에게 “내가 돈을 줬다고 하던가요. 누가 그러던가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50kg이나 되는 현금 다발을 건넸다면 그렇게 말할 리 없다. 박 씨 집 경비원은 인터뷰에서 “검찰이 주차기록과 카메라기록을 다 가져갔는데 그날 그 사람(시형 씨)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차용증도 문제였다. 특검이 실제 작성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원본 파일 제출을 요구하자 청와대는 “삭제됐다”고 했다.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이쯤 되면 “큰어머니에게 돈을 받아왔다”는 시형 씨 말을 믿어줄 사람은 몇 안 돼 보인다. 특검 주변에서 “이 대통령 돈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 건 그래서다.

검찰과 특검에서 이리저리 진술을 바꿔야 했던 시형 씨의 마음고생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시키는 대로 한 아들이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 대통령 부부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아들의 장래를 위해 아들 명의로 땅을 매입했다’고 한 김윤옥 여사의 서면진술엔 이런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다. 김 여사는 ‘아들이 빚을 못 갚으면 담보로 제공한 논현동 땅을 팔아 갚으려고 했다’고 해 증여 의도를 사실상 시인했다. 형사처벌 위기에 놓인 아들을 구하고 편법증여의 비난은 자신이 감수하겠다는 의미였다.

누구나 자식 앞에선 마음이 약해진다. 잘 풀리지 않는 자식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래선 안 된다. 자식을 위해 편법을 쓰는 대통령을 이해할 국민은 없다. 애틋한 부모의 정이 결국 아들을 욕보이고 국가원수의 체면만 구겼다. 딱한 일이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이시형#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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