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너∼무 심각한 ‘골프 이중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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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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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캐디①

최근 남자프로골프대회가 열렸던 국내 한 골프장의 기자실. 한 여성이 대회 관련 기사를 붙여놓은 게시판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렸다. 그 골프장 캐디(경기 보조원)였다. “내 얼굴 나온 사진 함부로 쓰면 어떻게 해요. 남편은 내가 캐디 일 하는 줄 모른단 말이에요.” 한동안 짜증을 내던 그는 자신의 사진이 게재된 신문 스크랩을 뜯어버렸다.

#캐디②

21일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이 우승한 하나·외환 챔피언십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세계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국내 유일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이기도 했지만 이븐데일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 이보연 프로(20)가 출전해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대회 주최 측이 와일드카드 1장을 내건 특별 예선전에서 60 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출전권을 따냈다.

필자는 캐디①의 신상 노출 우려에 골프장과 대회명은 밝히지 않았다. 반면 캐디②에 관해서는 별 걱정 없이 실명까지 적었다.

이것이 한국 골프의 ‘슬픈 현주소’다. 우리나라처럼 골프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비유의 순서는 바뀌었지만 캐디는 내 아내에겐 부적절한 직업, 경제적 여유가 없는 프로골퍼에게는 안성맞춤 아르바이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골프 치는 사람’을 보는 시선도 극과 극이다. 외환위기의 시름을 약간은 덜어준 박세리의 맨발 샷 투혼에 감동하고 최경주와 양용은의 우승 세리머니에 환호했다. 정부는 그들에게 훈장도 수여했다. 하지만 일반 골퍼는 엄청난 세금을 바치는 ‘봉’일 뿐이다. 골퍼가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할 때 내는 개별소비세는 카지노의 4배, 경마장의 23배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는 2월 “승마나 요트에도 없는 개별소비세가 골프에만 적용되는 것은 명백한 차별과세”라며 위헌소송을 내기도 했다.

골프장을 보는 눈도 ‘어른들의 최고 놀이터’와 ‘부자들만의 자유 공간’으로 엇갈린다. 한 대선 캠프에서는 ‘골프 자제령’까지 내릴 정도로 골프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골프장 인허가 관련 각종 비리와 고가(高價) 외제 골프클럽 밀수, 연간 3조 원 이상을 쓰는 해외 골프관광….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하다.

요즘 골프장업계 최대 관심사는 정부가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2014년까지 한시적으로 회원제 골프장 개별소비세 감면’ 조항을 넣은 세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다. 정부는 최근 적자 골프장이 속출하고 있고 그린피 인하로 해외로 나가는 골프 인구를 국내로 끌어들이면 골프장은 물론이고 골프용품업계와 농가까지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한국대중골프장협회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표를 의식한 여야 모두 ‘부자 감세(減稅)’의 전형이라며 반대해 새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에야 여야가 결정할 공산이 크다.

이미 2009년부터 2년간 지방 회원제 골프장에 대해선 개별소비세 감면이 시행됐다. 하지만 대중골프장 예상 내장객이 지방 회원제 골프장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로 대중골프장 이용객만 30%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마지막으로 ‘불편한 진실’ 한 가지.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프로야구 입장객은 680만 명이었고 골프장 내장객은 2840만 명이었다. 숫자만 비교해도 4배 이상인 데다 관람객이 아닌 플레이어라는 점에서 현실에 맞게 골프를 보는 눈도 달라질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안영식 스포츠레저부장 ysahn@donga.com
#골프#캐디#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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