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安 후보 ‘권력 나누기’엔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5월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에게 공동정부 구성을 제의한 데 이어 9월 16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책임총리제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 측은 구체적으로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 비전과 통일 외교 국방을 담당하고 나머지 국정은 국무총리가 책임지는 권력분담 구상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안 후보는 “자유롭게 논의하는 과정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이런 구상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음을 시사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권력구조를 ‘대통령 책임제’로 분명히 한 것이다. 따라서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총리가 책임지는 국정’은 성립할 수 없다. 헌법에 저촉되지 않게 대통령과 총리 간에 권력을 분담하더라도 결국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귀속된다. 공동정부론은 공직을 나눠주는 ‘보은인사’ 뺨치는 권력 남용이 될 수 있다. 정권을 전리품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안 후보는 7일 정책 비전을 발표하면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국회 동의를 거쳐서 행사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사면권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이미 헌법에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안 후보가 국회 동의가 불필요한 특별사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면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대통령이 행사하는 특별사면도 말이 많은데 국회 동의까지 받도록 한다면 예산안처럼 여야의 끼워 넣기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안 후보는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임명하는 자리가 1만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것을 10분의 1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국정을 관할하고 그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자리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청와대에서 다른 데로 넘긴다면 임명직 선출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압력이 더 커지고 로비가 횡행할 것이다. 대법원장 후보를 대법관회의에서 호선으로 추천토록 한다거나 감사원장 후보 추천을 국회에 맡기겠다는 발상도 헌법에 규정된 권력분립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대통령에 대해 흔히 제왕적(帝王的), 만기친람(萬機親覽), 무소불위(無所不爲) 같은 수식어가 붙지만 대통령과 국회가 헌법을 제대로 지켰더라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의 권력에 비해 국회의 권력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추세를 보인다. 대선후보 단일화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나누거나, 대통령의 권한 축소를 말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한 발상이다. 안 후보의 권력 나누기 구상에는 대통령 자리가 갖는 막중함에 대한 책임의식이 결여돼 있다.
#안철수#권력 나누기#책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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