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권재현]‘강남스타일’과 ‘도둑들’의 성공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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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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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문화부 차장
권재현 문화부 차장
남북 간 냉전이 치열하던 시기 판문점에서 있었던 일화다. 어느 날 북측 병사들이 인공기를 마주 보이는 태극기보다 좀 더 높게 게양했다. 이걸 본 남측 병사들도 질세라 다음 날 태극기를 더 높게 게양했다. 그렇게 경쟁이 붙다 보니 양측의 깃대가 점점 높아졌다. 결국엔 양측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깃대를 타고 기어 올라가 국기를 게양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을 ‘안보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자국의 안보 강화를 위해 취한 위세 과시가 상대국엔 침략 위협의 신호로 받아들여져 결국은 양국 모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안보 위기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외교안보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홍수를 막기 위해 댐을 쌓는 것이 오히려 대규모 홍수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그렇다. 댐을 통해 강물의 잦은 범람은 막을 수 있지만 그게 자주 반복되다가 댐의 저장 수위를 넘어서는 대홍수가 발생하면 하류에 살던 사람에겐 유례 없는 재앙이 되고 만다.

이를 현대사회이론에 적용한 것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이다. 산업화와 과학문명의 발전이 일상의 위험을 통제·관리하고 나선 것이 오히려 인류를 환경 파괴와 핵전쟁 같은 전례 없는 위험에 직면하게 만들었고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일상화시키는 역설을 낳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여기까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를 문화예술 분야에 적용할 경우엔 고개를 갸웃하기 쉽다.

대중문화시대가 열리면서 문화상품의 선풍적 흥행몰이를 선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시된다. 대중문화산업 종사자들에게 ‘대박의 꿈’은 다다익선에 가깝다. 문화적 대박 상품을 내놓는 개인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고 그것을 향유하는 대중 역시 그 달콤한 성공신화를 살짝 나누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박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회 전체의 갈등수위도 함께 상승한다는 점은 쉽게 간과된다. 이를 이해하려면 프랑스 문화이론가 르네 지라르의 ‘모방욕망이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욕망은 결코 내재적인 게 아니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모방하면서 형성되고 자란다. 지라르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부채질하면서 경쟁자도 되는 그들을 욕망의 짝패라고 불렀다. 문제는 욕망의 짝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적대와 증오의 수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는 점이다. 그 갈등의 수위가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까지 치솟으면 결국 무고한 희생양에 대한 무차별적 집단폭력으로 방출된다.

대중문화시대가 가져온 ‘대박의 신화’와 그 신화의 주역인 슈퍼스타는 불특정한 욕망의 짝패를 단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조장한다. 물론 그 상당수는 사회적 완충의 댐 수위를 넘어서지 못한 채 ‘단비’로 끝난다. 하지만 그 수위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 순간 축복은 재앙으로 돌변한다. 이 경우 그 희생양으로 해당 슈퍼스타가 낙인찍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문화적 싹쓸이가 무서운 진짜 이유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히트와 영화 ‘도둑들’의 1300만 관객 돌파를 마냥 반길 수만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이 대중의 환호와 기록에만 눈이 멀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를 망각한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 사회도 로또복권 당첨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듯이 문화적 대박의 신화 역시 사회적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인식할 때가 됐다.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
#강남스타일#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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