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문명사회의 야만적인 개 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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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5일 01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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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사회부장
이기홍 사회부장
바닥에는 털이 다 벗겨진 개 3마리가 널브러져 있다. 바로 옆에서 도축 차례를 기다리던 백구는 낯선 기자를 봐도 짖기는커녕 눈도 마주치질 못한다. 조금 전 다른 개가 도살되는 걸 본 백구는 완전히 질려 있다.

콘크리트 가건물 바닥에 널브러진 전기충격기와 털을 제거하는 원통형 기계는 보기만 해도 살벌하다. 옆 방 철창 속에선 개 10여 마리가 울부짖고 마당에는 무쇠 가마솥 5개가 김을 뿜어낸다. 올여름 동아일보 기자가 찾아간 서울 근교 야산의 도축장 풍경이다.

연간 200만 마리 무참히 도축

개고기 피크시즌이 지나갔다. 이제 좀 차분하게 '개고기'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계절이 됐다. 사실 개고기 찬반처럼 승패나 결론을 내기 힘든 논쟁도 드물다. 개 논쟁을 벌일 만큼 우리 사회가 한가한 상황도 아니다. 사람 먹고 살기도 힘들고 흉악범죄 때문에 불안한 세상 아닌가.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개 사육과 도축 광경은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우리 사회에선 연간 200만 마리가 넘는 개가 식용으로 도축되지만 개의 도축과 유통, 위생관리를 규제하고 관리하는 법 조항은 없다. 주무 행정기관도 없다.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개는 가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 말 닭 등 가축으로 규정된 13종은 도축에서부터 유통 전반에 걸쳐 법령의 규제와 감시를 받으며, 허가받은 작업장에서만 도축할 수 있다.

개도 가축에 포함시키면 법의 통제를 받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반대한다. 식용으로 키우는 동물을 뜻하는 가축에 개를 포함시키면 '개고기를 합법화해주는 격이 된다'는 게 반대 논리다. 결국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개는 무허가 건물, 야산, 전통시장 등에서 마구잡이로 도축된다. 위생관리도 거의 방임상태다.

일부 식용견 사육장의 열악한 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배설물 치우기가 편하다는 이유로 '뜬창'에서 기르는 곳도 있다. 뜬창은 바닥이 공중에 떠있는 창살 우리다. 사람이라면 창살에 배겨서 10분도 앉아 있지 못할 좁은 공간에서 개들은 짧은 일생을 보내다 도축장으로 끌려간다. 도축장으로 운반할 때는 철망속에 던져 구겨넣다시피 한다. 손님이 원할 경우 일부러 망치로 때려잡는 곳도 여전히 남아있다고 한다. 최근 채널A의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 취재팀이 르포한 한 사육장의 개들은 온통 오물에 뒤덮인 채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주변엔 항생제 병이 수북했다. 사육장 주인조차 "나라면 안 먹는다"고 할 정도다.

이처럼 잔혹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법과 제도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동물보호법을 강화해 적극적으로 법집행을 해야 한다. 동물보호단체들도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접근법을 재고해야 한다. 도축 및 유통조건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을 '개고기 합법화'로 간주해 반대만 하는 동안 아무런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수많은 개가 처참히 도살되고 있다. 가축으로 규정하지는 않되 축산물위생관리법 제3장 '위생관리'를 개와 고양이 등에도 적용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등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개고기 찬반 논쟁은 앞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문제다. '소, 돼지, 물고기는 먹으면서 왜 개는 안 되느냐'는 식의 단선적 주장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풀잎도 생명이고, 벌레도 생명이고, 물고기도 생명이고, 돼지도 생명이고, 소도 생명이고, 개도 생명이다. 생명은 모두 소중하지만 모든 동물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지능과 감성, 교감능력의 스펙트럼에서 고등동물로 갈수록 그 생명을 빼앗을 때의 명분과 인간에게 주는 유용성이 비례해서 커야만 한다. 개는 그 스펙트럼에서 가장 고등동물 쪽에 있으며 많은 사람이 친구처럼, 가족처럼 여기는 동물이다.

비위생적 환경부터 개선해야

물론 개를 식용하기 위해 키운 가축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식습관, 그리고 생업으로 개고기를 취급하는 이들의 생존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는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되 일단은 그 중간에서 현실적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외국인의 시선은 더이상 의식할 필요가 없다.

개고기를 먹든, 반대하든 지금 같은 야만은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잔혹성의 순화, 미래에 문명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의 정서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타인과 다른 생명체에 대해 감정이입을 하고 측은지심을 느끼는 능력은 한 사회의 따스함과 문명의 진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다.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개 도살#문명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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